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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내게 딱 맞는 신발, AI 추천 받아볼까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0년 11월호

 

음식부터 옷, 가전제품까지 뭐든지 척척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필자가 온라인으로는 구매를 꺼리는 상품이 있다. 신발이다. 신발 회사마다 미묘하게 사이즈가 달라서 직접 신어보지 않고는 내게 정확히 맞는 신발을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펄핏’이란 앱을 알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발 사진을 찍으면 사이즈를 측정해주고 딱 맞는 신발을 추천해준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펄핏이 제공하는 종이 위에 양쪽 발을 차례로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왼발, 오른발의 길이, 너비 측정결과가 나오고 내 발볼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좁은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에 맞는 운동화를 추천받았다. 마침 새 운동화가 필요해서 바로 주문해봤다. 내심 “잘 맞을까” 의심했는데 배달된 운동화는 그야말로 딱 맞았다!
이런 신기하고 유용한 기술을 개발해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펄핏의 이선용 대표를 만나봤다.
“시장에 나와 있는 신발들이 사이즈가 조금씩 다르게 생산됩니다. 그래서 신발들의 내측 모양을 정확히 측정해서 데이터베이스화 해놓은 다음에 고객이 온라인에서 구매할 때 발 사이즈에 정확히 맞는 신발을 골라주는 추천엔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신발 큐레이션, 구독 모델 등 시도했지만 문제는 ‘사이즈’
이 대표는 원래 농구마니아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를 즐겼다. 그런데 자신의 발에 맞는 여성용 농구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여러 가지 창업 아이템에 도전하다 결국은 자신이 잘 아는 문제를 푸는 데 도전하게 되는데 이 대표도 그랬다. 다만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
“어릴 때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며 사용하는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창업에 끌렸던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IBM코리아에서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담당 컨설턴트로 3년간 일했다. 직장인으로 적당한 경험을 쌓았다고 느낀 2014년 드디어 ‘뭔가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에 나섰다. 부모님께는 “돈 들여 MBA를 다녀오는 대신 창업을 통해 직접 비즈니스를 배우고 싶다”고 설득했다.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딸의 이야기에 부모님은 선뜻 동의해주셨다.
고민 끝에 정한 첫 창업 아이템은 1인 창작자들이 만드는 예술 제품을 하루 동안 공방체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원데이클래스 플랫폼이었다. “지금은 클래스101 등 비슷한 아이템이 인기인데요. 당시에는 너무 빨랐던 것 같습니다. 10개월 만에 접었습니다.”
첫 번째 창업 아이템을 접고 새로운 모색을 하던 2015년 말 뉴욕에서 진행되는 창업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자포스(Zappos)라는 미국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신발 전문 온라인 쇼핑몰로 성장해 아마존에 1조 원이 넘는 금액으로 매각된 회사다.
“신발 온라인 판매만으로도 1조 원 가치의 회사를 만들고, 또 일하기 좋은 회사로도 계속 1위로 꼽히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2016년부터는 신발 온라인 커머스 회사로 도전을 시작했다. 큐레이션, 구독 모델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한 달에 여성 구두 30켤레를 보내주고 그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게 하는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계속 사이즈가 문제였다. 정확한 치수의 신발을 보내주지 못해 반품률이 높아 효율성이 떨어졌다.
2017년부터는 슈가진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구두 쇼핑몰을 만들었다. 퀴즈를 통해 고객의 신발 취향을 파악하고, 사이즈도 자세히 입력하도록 한 다음 5개의 구두를 추천해줬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3명이서 월 600~800만 원어치 신발을 팔았습니다. 반품 처리 등에 매달리다 보니 수익이 100만 원 정도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월급은커녕 마케팅, 유통 등에 들어가는 비용조차 충당이 어려웠습니다.”

일일이 모은 발 사진만 17만 장…사이즈 추천엔진 구매 만족도 90%
너무 힘들었다. 이 대표는 당시 회사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다른 2명의 동료가 한 달 동안 집에 가지를 않았다. 계속 문제 해결방법을 궁리하면서 “뭐가 되든지 3년은 채워보자. 뭔가 만들어보자”고 오히려 이 대표를 격려했다. 팀은 “딱 맞는 신발을 온라인에서 골라주는 것은 전 세계인이 다 풀지 못하는 문제다.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름 아닌 기술로 풀어보기로 했다.?
“신발은 사이즈로 인한 반품률이 옷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미국에서는 반품되는 신발이 연간 15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것만 해결하면 뭔가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발 사이즈 문제를 기술로 풀겠다고 방향을 잡자 사업계획서도 몇 시간 만에 술술 풀렸다. 유명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스에 들어가 프로토타입 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데모데이에서 첫 제품을 선보였다. 그때부터는 모두 ‘발에 미친 사람’이 됐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신발의 내측 사이즈를 정확히 측정해서 신발 데이터를 모으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발 사이즈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하드웨어도 만들어 대기업에 판매하기도 했다.
“3만5천 명 정도는 실제 대면을 해서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마라톤 행사, 패션 행사, 스타트업 행사 등에 나가서 부스를 설치하고 사은품 등을 제공하며 참여하도록 했죠. 그들의 발 사이즈를 재고, 적당한 신발을 직접 신어보도록 했습니다. 어떤 발 모양에 어떤 신발이 착용감이 좋은지 하나하나 조사한 것이죠.”
그렇게 발을 찍은 사진 17만 장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사이즈와 착용감 데이터로 ‘이런 발에는 이런 내측 모양을 가진 신발이 맞다’고 머신러닝을 통해 컴퓨터에 계속 학습시켜 정밀도를 높여갔다.
말이 쉽지 8만 명이 넘는 사람의 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란 소리도 들었지만 이처럼 우직하게 데이터를 쌓고 가공하는 일을 2년 가까이 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2019년 말 인공지능(AI) 신발 사이즈 추천엔진을 완성해냈다. 처음에는 이 추천엔진을 쇼핑몰에 제공하려고 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이 정도라면 직접 쇼핑몰을 만들어서 팔아봐도 될 것 같았다.
2020년 1월부터 앱을 통한 자체 쇼핑몰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10만 명이 가입했고 매달 주문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원하는 고객에게는 발 사이즈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펄핏 키트를 보내준다. 여기에 발을 올려놓고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측정하면 딱 맞는 신발을 추천해준다.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추천받아 구입한 경우는 반품률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사이즈를 측정하고 구입한 경우 90%가 만족한다고 했다.
자신감을 얻은 펄핏은 이제 사업 확장을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다. 다양한 신발 업체에 이 AI 추천엔진을 솔루션으로 제공해 성장해나갈 계획이다. 발 사이즈 측정은 만국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외진출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펄핏의 추천엔진이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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