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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즐거운 불편을 부르는 에고에고, 에코라이프작은 것들의 어택
고금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 2020년 11월호



카페에서 혼자 텀블러를 척 꺼내면 너 혼자 일회용 안 쓴다고 쓰레기가 줄 것 같냐,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는 시민들이 뭉쳐 만든 작은 승리들을 생각한다. 몰래 숨겨둔 소금 초콜릿을 꺼내 먹듯이. 초콜릿의 당도가 몸에 퍼지는 것처럼 텀블러를 쥔 손이 당당해진다.
2018년 ‘쓰레기 대란’이 터졌을 때 온라인에 ‘쓰레기 사고 싶지 않은 사람들, 모이세요’라고 올렸다. 그렇게 만난 40명의 사람들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불필요한 봉지를 까서 돌려주는 ‘플라스틱 어택(attack)’을 진행했다. 시민들에게만 분리배출하라고 하지만 말고 유통과 생산에서부터 쓰레기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직접행동이랄까. 우리는 과대포장을 개선하고 유해한 플라스틱 PVC를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브로콜리, 당근 등을 싼 랩이나 중국집 랩은 얇고 접착력이 좋은 PVC를 사용했는데, 플라스틱 어택이 열린 후 식품용 PVC 랩 사용이 금지됐다. 내년 1월부터는 3개 이하 상품의 n+1 묶음포장이 금지된다.
지난여름 홍대 거리에 70여 명이 모여 일회용 컵 1천여 개를 주워 가장 많이 버려진 카페에 돌려주는 ‘플라스틱 컵어택’을 열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해 돈을 번 기업과 편리함을 누린 소비자가 책임지라는 퍼포먼스였다. 테이크아웃 컵을 씻고 컵홀더와 빨대를 제거해 보내도 재활용 업체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 재활용을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회용 컵 수거 시스템과 재활용 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서명운동을 열었다. 3천여 명이 서명했고,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달라고 테이크아웃 컵에 꽃을 심어 손편지와 함께 국회의원들에게 배달했다. 올해 4월 법이 개정돼 2022년부터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된다.
플라스틱 어택은 대상이 점점 다양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음료에 붙어 있는 빨대를 버리지 않기 위해 11일을 ‘빨대데이’로 정하고 음료회사에 빨대를 보냈다. 한 오픈채팅방에서 쓰레기 덕후 한 명이 “빨대를 버리지 않을 선택권을 주세요. 빨대를 안 붙이면 안 될까요?” 하고 나서줬다. 그 결과 한 음료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빨대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제품 디자인을 개선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회사는 요구르트에 붙은 빨대를 떼어내는 결정을 한다.
그 다음 타자는 스팸에 붙은 뚜껑. 참치 캔은 뚜껑이 없는데 왜 스팸에만 뚜껑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모였다. 스팸 뚜껑은 밀폐도 안 되므로 바로 버려진다.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손이 많이 가서 재활용도 안 된다. 그래서 스팸 뚜껑을 모아 보내는 ‘스팸 어택’을 진행했다. 얼마 전 한 스팸 업체는 뚜껑 없는 스팸을 추석 선물세트에 선보였다.
현재 배틀그라운드는 ‘진로 어택’이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리병 재사용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보증금이 붙은 초록색 소주병은 라벨을 제거하고 세척해 각 주류회사로 보내면 재사용된다. 회사별로 병 모양이 다르면 병의 분류·보관·운송이 힘들어지고 재사용 비용이 높아진다. 그런데 한 회사가 공통 초록병 협약을 깨고 레트로 병을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에 다른 회사들도 제각각 다른 병의 출시를 고려하고 있다. 우리는 유리병 재사용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재사용 표준병 협약을 저버린 회사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https://www.jinro-act.org).
중국 작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고 했다. 쓰레기 문제를 자기 일로 여기는 쓰레기 덕후들의 자발적 어택이 작은 변화를 만든다. 우리의 힘은 함께 모여 뭐 하나라도 직접 해보는 간절함에 있다. 이 작은 승리들은 ‘나 혼자 해봤자 무슨 소용 있어’ 대신 ‘나조차 안 하면 어떻게 해. 내가 하면 누군가 나서줄 거야.’라는 믿음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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