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ENG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즐거운 불편을 부르는 에고에고, 에코라이프사람의 얼굴을 한 쓰레기
고금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 활동가 2020년 12월호


나는 40세대가 거주하는 30년 된 연립빌라에 산다. 키 작은 다세대 빌라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서울 망원동의 흔하디흔한 붉은 벽돌 건물.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마포자원회수시설로 보내져 재활용품은 일부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된 후 인천 쓰레기 매립지에 묻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쓰레기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가장 먼저 모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분리배출(이라고 쓰고, 내다 버렸다고 읽는다)한 사물을 직접 만지고 분류하고 처리하는 ‘폐지 줍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망원동 고물상에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나타난 어르신들은 폐지만 줍진 않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통상적으로 ‘폐지 줍는 사람들’로 불린다. ‘넝마주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고릿적 장롱에서 꺼낸 느낌이고, 해외의 ‘웨이스트 피커’란 용어는 외국어라 입에 붙지 않는다.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이 없으면 존재는 투명하게 지워진다. 그리고 그들의 일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존재와 가치 역시 투명하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8년 생활폐기물과 ‘폐지 줍는 어르신’ 통계를 보면 어르신들의 한 해 폐기물 총수거량은 약 240만9천 톤으로 추정된다. 현재 폐지 1kg당 고물상이 쳐주는 가격은 50원이다. 재활용품 수집인이 5~12시간 일해서 100kg을 수거할 경우 일당 5천 원, 시급 약 1천 원을 번다.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이니 최저시급의 11.6%에 그친다. 왜 ‘쓰레기 박사’ 홍수열 소장이 수거 비용을 생각하면 주택가 지역은 주민들이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간다. 재활용 수집인들은 지자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도시의 틈새를 메우며 거주민의 일을 대신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폐지 줍는 분’들이 받는 노동의 대가는 총 3억3천만 원인데, 세금으로 그들이 모은 폐기물을 처리할 경우 최소 16억 원이 필요하다. 즉 그들의 노동을 갈아 넣은 덕에 세금의 약 80%를 절약하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폐기물을 재활용한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212만4천 톤, 폐기물 매립 및 소각 비용은 5,268억 원을 절감하며, 약 1조5천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에 따르면 ‘각 사물에는 그것 자체의 사회적 생활(social life of things)’이 있다. 사물에 부여되는 가치와 의미는 그 사물에 내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상황과 맥락 속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고로 ‘쓰레기가 무엇인가,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품 아니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본질상 애초에 쓰레기인 것은 없다. 쓰레기가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버려진 물질이 쓰레기가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과 쓰레기가 되지 않는 삶들의 경계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보다 흐릿할지도 모른다. 그 경계선의 한편에 폐지 줍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러니 쓰레기에도 얼굴이 있다. 아니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얼굴이 있는 거래만큼이나 쓰레기에 담긴 얼굴도 중요하다. 김장 배추 이파리를 하나씩 들쳐 배춧속 깊이 양념을 버무리듯 쓰레기를 하나씩 들어 올려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바꿔내는 손길과 시간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사물로 되살아난다면 그 8할은 쓰레기를 매만진 사람들 덕분이다.
유해물질의 국제 이동을 반대해온 환경활동가 짐 퍼킷은 말한다. “쓰레기는 늘 경제적 저항이 적은 경로로 흘러내린다.” 부자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쓰레기가 이동한다. 부자들이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지만 결국 가난한 자가 그 처리를 맡는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가, 그 과정에 켜켜이 인간의 얼굴을 한 쓰레기가 놓여 있다. ‘쓰레기 덕질’을 하며 다시 돌아온 지점은 결국, 사람이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