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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승선의 브랜드텔링슈퍼 히어로들의 영원한 고향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20년 12월호

 

1929년 미국 뉴욕엔 주가 대폭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왔다. 이른바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월가엔 활기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경제적 어려움을 감당해야만 했고 모두가 힘든 상황에 누구 하나 기댈 곳 없던 암울한 1930년대 뉴욕에 한줄기 빛을 선사한 것은 펜촉 끝에서 창조된 슈퍼 히어로였다. 새로운 스타일의 만화 잡지 『액션 코믹스』 1호에 담긴 슈퍼맨의 활약은 어려운 이들에게 위안이 됐고 소설 등을 펴내던 출판사들은 저마다 코믹스 부서를 만들고 새로운 슈퍼 히어로들을 쏟아냈다. 이른바 ‘코믹스 골든 에이지’의 시작이었다. 
저가 소설 잡지를 출간해 판매하고 있던 마틴 굿맨(Martin Goodman)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화 전문 출판사 ‘타임리 코믹스’를 설립한다. 그는 만화책 출판사 퍼니스와 협업해 ‘휴먼 토치’와 ‘서브 마리너’라는 새로운 히어로를 만들고, 자신이 출간한 공상과학 소설 잡지 『마블 사이언스 스토리』의 이름을 따와 1939년 『마블 코믹스』 1호를 출간했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 1호는 대성공을 거둔다. 놀라움을 의미하는 ‘마블(marvel)’이라는 단어가 경이롭고 놀라운 힘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의 상징이 되는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내 친구 슈퍼 히어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마블 코믹스』는 첫 편집자 조 사이먼(Joe Simon)과 잭 커비(Jack Kirby)의 협업으로 자유와 정의, 애국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라는 영웅을 창조해냈다. 깡마르고 병약해 군에서도 받아주지 않던 애국심 투철한 청년이 군대의 실험에 의해 후천적 능력을 갖게 된 후 온몸에 성조기를 두른 듯한 슈트를 입고 히틀러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마치 자신이 그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뻐했다.
1956년 조 사이먼의 뒤를 이어두 번째편집자가 된 스탠 리(Stan Lee)는 평범한 가족이 감마선에 노출된 후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슈퍼 히어로 팀 ‘판타스틱 4’를 만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이 우연하게 얻은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감정이입이 된 사람들은 판타스틱 4를 자신의가족인 양받아들였다. 이로써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은 보통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큰 능력을 얻게 되는 이야기를 펼치며 마치 슈퍼 히어로가 나의 이웃으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판타스틱 4의 팬들은 스탠 리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스탠 리는 이에 화답하듯이때부터잡지의 맨 뒷면에 마블의 히어로 탄생과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친절하게 설명하는칼럼을게재해 팬들과 소통하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나갔다.
1962년엔 현명하고 올바르고정의로워야만 하는 슈퍼 히어로의 룰을 깨고 괴물 헐크를 슈퍼 히어로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생활고에 허덕이는 10대 고아 소년이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으로 변모하는 슈퍼 히어로를 만들기도 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 토르를현시대의히어로로 등장시키고, 돈만 알던 무기 사업가가 자신의 무기로 위험에 빠지면서 등장하게 된 아이언맨 등 마블은 기존과는 다른 탄생 스토리를 가진 히어로들을 쏟아냈다. 이로써 미국시장 만화잡지 판매부수에서 만년 1위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DC 코믹스를제치고‘마블’이란 이름 아래 모인 히어로 군단이 1위로 올라선다. 
차별화란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치를 느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마블의 차별화는 내 손에 닿을 것만 같은 히어로를 등장시켜 그들이 마치 우리 옆집에서 혹은 가까이에서 나를도와줄것만 같고 어쩌면 그들과 대화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도록 그들을 현실로 끌어온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짧은 시간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슈퍼 히어로를 쏟아낸 스탠 리의 능력은 마블 작법(Marvel Method)이란 방법에서 비롯됐다. 마블 작법은 스탠 리가 생각한 스토리를 만화 작가에게 처음과 끝부분만 들려주고 중간 부분은 만화 작가가 스스로 채워 만드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로써 마블 히어로의 정체성을 연결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마블은 숙련된 만화 작가를 배출하는만화 사관학교가돼갔다.
스탠 리는 또한 수많은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마블의 모든 슈퍼 히어로들이 각기 다른 히어로 스토리에 서로 등장해 도움을 주기도 하고카메오로잠깐 얼굴만 비추는 식으로 그들이 사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공유하는 마블 세계관(Marvel Universe)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슈퍼 히어로들이살아 숨 쉬는또 하나의 세계가만들어진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히어로들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각자의 능력을 모아 함께 악을 응징하고 갈등을 해소한다.
1989년 ‘마블 필름’ 이후 만화의 스토리가 시대에 맞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TV에 방영되면서 마블의 세계관은 점차 확대됐다.2008년부터는아이언맨을 시작으로 CG를 적용한 실사 영화가 제작돼 전 세계 영화팬들을 마블의 세계관으로 이끌었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그 가치는 서로 다른 시대와 동떨어진 공간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전달된다. 맨 처음 브랜드를 만든 이가 낸 목소리가 가치 있다면 만든 이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어느 시대에서든 그 목소리는 살아 있고 어떤 공간에라도 전달되는 것이다. 브랜드를 만들 때 사람을 향한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브랜드의 목소리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2018년 11월 12일에 스탠 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마블 시리즈를 통해 생생히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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