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영화라고 하면 한국의 대중은 보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는 감독도 없고, 배우도 생소하고, 별로 본 적도 없어서 손사래를 치고는 한다. <호프>, 이 작품은 어떤가. 마리아 소달 감독이 연출했다. 모르는 감독이라고? 그럼 이 배우는 어떤가,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어디에 출연한 배우냐고? <어벤져스>와 <토르> 시리즈에서 물리학자 에릭 셀빅을 연기했던 그 배우다! 갑자기 <호프>에 관한 관심이 샘솟지 않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토마스(스텔란 스카스가드)는 크리스마스 이틀을 앞두고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부 관계인 아내 안야(안드레아 베인 호픽)의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얼마 전 폐에 있던 암 제거 수술을 받아 더는 문제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폐에 있던 암이 뇌로 전이돼 종양이 발견됐다. 충격적인 소식이기는 해도 폐암을 이겨낸 전력도 있는데 이번에도 수술을 잘 받는다면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의사가 꿈 깨란다. 정말로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니지만, 머리를 절개해 뇌 안의 종양을 제거해도 부작용이 동반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수술하기보다 남은 삶 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안야는 이런 돌팔이를 봤나! 실제로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니어도 비슷한 뉘앙스로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더 큰 병원, 더 저명한 의사를 찾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불확실함에 모험을 거느니 시한부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확실한 ‘희망’을 챙기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의견이다. <호프>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여과 없이 아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마리아 소달 감독 본인의 사연을 바탕으로 했다. 감독이 보기에 죽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발생하는 소통의 단절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극 중 안야와 토마스 부부에게는 여섯 명의 자녀가 있다. 안야는 무대 감독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이 아이들을 잘 돌봐왔다. 토마스는 그렇지 않았다. 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안야는 그게 불만이었다. 자녀 문제에 있어서는 토마스를 믿을 수 없어 그 때문에라도 안야는 더 살고 싶었다.
이 병원이 안 되면 저 병원을, 저 의사가 안 되면 이 의사를 찾을수록 안야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신경질이 났다. 종양 저리 비켜! 변비 뚫는 둘코락스의 심정으로 니가 나를 데려가도 우리 가족까지 힘들게 하지는 않을 테다, 라고 마음먹으니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맞게 되는 보편의 운명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리고 엄마가 부재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 기간을 두는 것, 그럼으로써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만큼이나 행복한 죽음이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안야를 연기한 안드레아 베인 호픽은 “읽어본 대본 중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였다”며 “이 영화는 기존의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랑 이야기”라고 <호프>를 정의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죽음을 알리고 남은 시간 동안 그 사랑이 최대치가 될 수 있도록 안야와 토마스와 자녀들은 평생에 없을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호프>가 시간적 배경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해(年)가 바뀌는 시기까지로 설정한 건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고, 1월 1일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날이다.
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아무도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다. 음식을 나누고 잔을 들어 건배하고 선물을 나누며 파티를 만끽하는 안야의 가족에게 죽음 때문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없다. 오히려 죽음을 공유했기에 별로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모두가 함께하려는 의지가 가장 충만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 있는 크리스마스에 이들은 오히려 삶의 자유를 느낀다. 안야를 바라보는 토마스의 눈에는 그녀를 죽음으로 보내야 한다는 슬픔보다 둥글게 모인 가족 앞에서 안야와 춤을 출 수 있다는 행복감이 눈물로 넘쳐흐를 것처럼 가득 차 있다. 바로 이 순간을 기억하며 토마스는, 아이들은 새해를 맞이한다.
<호프>를 끝으로 ‘신나는 시네’의 연재를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1년만 쓰기로 했었는데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신나는 기분으로 무려 4년 동안 이어왔다. 글쟁이에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있다는 건 ‘희망’이다. 이를 봐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사랑’이다. 희망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4년의 세월이 있었기에 연재를 마무리하면서도 끝이라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아직도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곧 희망의 춤을 출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