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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에서의 뜨거운 새해는 그렇게 또 시작된다
김재우 KOTRA 수단 카르툼무역관장 2021년 01월호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지내다 평생 처음으로 무더운 새해 아침을 맞았다. 그래도 섭씨 30도의 낮 기온은 봐줄 만한 수준이다. 반년 이상 4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하루 24시간 에어컨을 켜다 보면 아침저녁으로 부는 산들바람은 반갑기 그지없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행복을 더 자주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주말 반나절 동안 아내와 함께 며칠 동안 먹을 과일과 채소를 열심히 다듬었다. 냉장고 수납공간을 감안해 장을 봐오면 바로바로 손질해둬야 한다. 장 본 것을 깜빡하고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썩어서 그냥 버려야 할 때가 많다. 그만큼 한국에서 귀찮아 미루곤 했던 일들도 정신 차려 신경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당근, 감자, 양파처럼 뿌리를 먹을 수 있는 야채는 구할 수 있지만 잎채소는 거의 구경을 못 한다. 운수 좋은 날엔 상추를 잔뜩 사와 열심히 물로 깨끗이 헹궈둔다. 처음엔 일반 수돗물에 씻고 정수기를 통과한 물로 다시 씻은 다음 생수로 헹군다. 이 모든 과정은 배탈이 나지 않기 위한 필수 코스다.
아프리카 대륙은 지구 육지의 20%를 차지할 만큼 실로 광대하며 유럽 대륙이 다섯 개 정도 들어갈 크기지만, 보통 세계지도에는 두 대륙의 크기 차이가 그다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삼차원의 지구를 이차원 지도에 그릴 때는 한쪽이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지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메르카토르 도법은 식민지 개척에 열중하던 유럽의 배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북반구에 중점을 두다 보니 아래쪽의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를 희생시켰다.

한때 이집트 지배한 대국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경제제재로 세계 최빈국 수준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단은 아프리카 54개국 중 영토가 가장 넓었다. 한반도의 11배나 되는 크기였는데, 이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서유럽 주요국을 다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 2011년에 남수단이 독립해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한반도의 8배나 된다.
이집트 바로 아래의 광활한 땅 수단은 기원전 700여 년쯤에는 검은 파라오라는 이름으로 한때 이집트 땅을 지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 유적이 발굴됐다. 수단은 이슬람권에 속한 아랍족들이 아프리카 영토에 살고 있는 조금 독특한 곳으로, 음주가 허용되지 않고 여성들의 복장도 엄격히 통제되는 등 이슬람 율법이 매우 강력하게 적용되는 나라로 손꼽힌다.
한편으론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깝다. 1인당 GDP는 1천 달러도 안 되지만 이마저도 빈부 격차가 심해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들은 훨씬 더 가난하다. 그런데 내가 만난 수단인들은 지식인도 상당히 많았고 배움에의 갈망도 컸다. 한때 수도에 위치한 카르툼대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학문적 수준이 높았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수단경제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른 불이익이다. 수단은 오랜 기간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외하곤 모든 개발지원, 금융거래 등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됐고 미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도로와 교통체계 등이 정비되지 못했다. 무역관 건물 앞은 주유소가 있어 늘 차가 많은데도 교차로 신호등이 5개월째 고장이다. 서로 앞질러 가려는 차들이 하루 종일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경찰이 잠깐 나오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어느새 경찰관은 현장에서 사라지고 없다.
주유소 기름값은 1년 새 자그마치 20배가량 올랐는데, 향후 기름값도 예측할 수가 없다. 비싼 기름마저도 주유소에 없어 사람들이 차를 대놓고 며칠씩 밤샘하며 기다리곤 한다. 눈치껏 암시장에서 기름을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일 때가 많다. 도로에 난 구멍은 그대로 방치되고 가로등은 없다시피 해서 밤에 운전을 할 때면 노면 구조를 외운 곳이 아니면 다니기 어렵다.
수단에 살지만 수단 땅이라도 함부로 다닐 수 없다. 수도를 벗어나 출장이라도 가려면 경찰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을 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셈이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수단은 또한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 늘 가방에 현금을 지니고 다닌다. 그래서 계산대에서는 한참 동안 돈 세는 것을 보며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점원들의 돈 세는 속도에 비해 세야 하는 지폐의 수량이 워낙 많으니 서로가 불편하지만 감내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가택연금 수준으로 살았다. 서울에서 보낸 이삿짐은 코로나19로 인해 아덴만을 거쳐 홍해로 들어와 수도 카르툼까지 오는 데 꼬박 반년이 걸렸다. 우리 직원들은 역대 가장 오래된 이삿짐을 받은 내게 ‘인샬라(‘알라신의 뜻대로’를 의미하는 말)’ 하며 위로를 건넸다. 나는 재택근무가 일상이었고 아이들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학기를 시작하고 끝냈다. 아내는 그 흔한 중국 마켓도 없는 이곳에서 가족의 삼시 세끼를 담당한다.

제재 풀리면 제조업은 가능성 보여
말라리아나 콜레라, 장티푸스처럼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는 수단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대응은 사치에 가깝다.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사실상 전무해 코로나19에 걸리면 집에서 해열제를 먹고 낫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단은 최근에 100여 년 만에 나일강 수위가 17m까지 상승해 50만 명 이상이 터전을 잃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 국경없는 의사회를 통해 온라인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인터넷에서 나일강이 범람한 지역 중 수단 지역을 찾아 위치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다.
친한 유엔 직원이 “도로만이라도 제대로 깔렸으면 좋겠다”고 푸념한다. 그가 소개해준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했는데, 이들도 늘 어려움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미스터 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내게 격려를 해줬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 국제기구의 원조는 한계가 있었고 수단 정부는 무상 원조만 기다리고 있고, 갑자기 뛴 환율 때문에 수입품의 가격은 두 배가 돼버렸다. 그래도 서서히 제재가 풀리면 수단의 제조업부터 키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을 동반하고 무역부와 관세청 관계자를 만나 통관지연 등에 대해 여러 차례 협조를 부탁했었다.
집에 가는 길에 꽃집에 들렀는데 냉장고에 빨강, 분홍, 노랑 장미들이 알록달록하게 놓여 있었다. 직업병이 발동해 어느 나라산이냐고 물었더니 에티오피아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장미향을 더 짙게 하려고 방향제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장미는 물을 잔뜩 줘도 곧 바삭바삭해질 것이다. 장미도 나도 열심히 견뎌야 할 텐데…. 우리의 2021년은 그렇게 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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