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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잠깐 다녀오겠습니다섬은 그리움이다. 마음의 쉼표, 승봉도
임운석 여행작가 2021년 01월호

 

잔잔한 바다에 물비늘이 일렁인다. 그 모양새가 나를 향한 손짓일까. 섬은 그리움이라 했다. 뜻 모를 그리움이 밀물과 함께 가슴에 부딪힌다. 쓸려가는 파도와 함께 마음속 상념도 떠내려간다. 새해 새날을 맞아 내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 찍고 싶은 마음에 승봉도를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 승봉도는 마음속 그리움이 됐다.

설레는 섬 여행의 시작
요즘처럼 섬에 관심이 쏠린 적이 또 있었을까? 언택트 여행이 주목받으면서 덩달아 섬여행이 뜨고 있다. 우리나라에는3,3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그 가운데 유인도는500여 개.비슷한 듯하지만 각기 다른 색을 뽐내는 섬의 매력에 빠져볼 때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힐링하기 좋은 섬으로 떠난다.
승봉도는 작다. 그런데 그런 섬치고는 볼 것이 많다. 섬 지형의 주맥을 이룬 야트막한 당산을 중심으로 솔숲이 우거지고, 바다와 맞닿은 곳은 밀가루를 풀어놓은 듯 고운 백사장이 드넓다. 자박자박 몇 걸음 더 걸어가면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발목을 붙잡아 결국 사진을 연거푸 찍고야 만다. 그런데 놀랍다. 인생 사진을 남길 줄이야.
승봉도는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 수준이다. 잰걸음으로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가는 곳마다 마음을 빼앗을 만한 풍경이 즐비해서다. 그러다 보니 작은 섬이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 이도 많단다.
승봉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웃한 섬으로 북쪽에 자월도, 서쪽에 대이작도가 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1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배가 출항한 지 20분 정도 지났다면 갑판으로 나와보자.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 사이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18.38km 길이의 인천대교를 볼 수 있다. 인천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세계적으로도 다섯 번째로 긴 사장교다. 주탑은 238.5m로 63빌딩 높이와 맞먹는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갑판에서 바라보는 인천대교의 위엄이 사뭇 경이롭다. 갑판에 나온 김에 바다 풍광을 조망하는 재미를 즐겨봐도 좋다. 영종도, 실미도, 무의도, 팔미도가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이후 자월도가 보이고 다음이 승봉도다.

 

그윽한 솔향에 취해 바다를 마주하다
승봉도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3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씨와 황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승봉도에 대피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섬 이곳저곳을 살펴본 그들은 먹을 것도 풍족하고 경관까지 빼어나다며 섬에 정착했다. 이후 자신들의 성을 따서 ‘신황도’로 부르다 섬의 지형이 마치 봉황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과 같다 하여 ‘승봉도’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승봉도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섬이 워낙 작아서 걸어 다녀도 아쉬울 게 없다. 승봉도 선착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승봉리에 닿는다. 평일에는 인적이 드문 한갓진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바쁜 도시인들에게는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여유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 마을을 지나면 오른편에 이일레 해수욕장이 나온다. 섬 주민들이 자랑하는 명소로 작은 섬에 비해 해변이 드넓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곱디고운 모래사장이다. 물이 빠져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으며 바닷속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맑다. 마치 남국의 바다를 닮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해변의 길이는 1.3km 남짓하고 폭은 40m가 넘는다. 그 끝자락까지 걸어가면 해송이 우거진 솔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섬사람들은 그 숲 한가운데로 길을 내고 산림욕장 팻말을 걸어놓았다. 산림욕장에 발을 들이면 해송이 하늘 높이 뻗어 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주고도 남을 듯하다. 물론 겨울에는 차디찬 바닷바람을 막아줘 아늑하다. 솔향이 온몸을 감싸고 기분마저 상쾌해졌다면 다시 해안가로 발길을 돌려볼 일이다.
해안가에는 승봉도 해안 산책로가 이어진다. 바다를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 산책로는 승봉도의 또 다른 절경인 목섬으로 잇댄다. 목섬은 물이 들면 섬이 됐다가 물이 빠지면 승봉도와 연결되는 작은 섬이다. 낚시꾼들에게는 물 반 고기 반이라 불릴 정도로 손맛이 좋은 낚시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목섬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신황정에 이른다. 섬에 처음 정착한 신씨와 황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정자인데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탁월하다. 오른쪽으로 목섬이 길게 드리우고 그 뒤로 검도, 부도가 아득하다. 더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하면 아스라이 제부도, 궁평항까지 바라볼 수 있다.
탁 트인 풍광에 가슴 깊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갔다면 다음 코스는 기암괴석을 감상할 차례다. 솔숲에 난 길을 따라 20여 분을 걷는다. 숲은 고요하다. 귓등에 울리는 파도 소리도 꼬리를 감출 무렵, 발걸음은 적막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듯하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해식 지형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북쪽 해안가다.
‘부채바위’는 그 생김새가 부채와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 질 녘에는 금빛 노을이 반사돼 황금색으로 변해 황금 부채처럼 빛난다. 전설에 따르면 한 선비가 부채바위 아래를 거닐다가 문뜩 떠오른 시를 과거시험에서 적어 냈더니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부채바위에 와서 좋은 성적을 얻게 해달라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부채바위 가까운 곳에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을 품은 바위도 볼만하다. 거대한 기암절벽에 구멍이 난 이 바위는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겨 커다란 구멍이 뚫렸는데 그 구멍이 마치 서울에 있는 남대문과 같다 하여 남대문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에도 전설이 깃들어 있다. 문을 지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것.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 시대 승봉도에 살던 사랑하는 남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둘은 결혼을 맹세할 만큼 사랑했지만, 여자의 부모가 딸을 다른 섬으로 시집보내려 하자 두 사람은 이 문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고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남대문바위는 섬을 찾은 연인들이 꼭 챙겨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승봉도 남동쪽 해안가에 있는 삼형제바위와 촛대바위도 놓치면 아쉽다. 이곳은 나무데크가 있어 해안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보다 기암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그 위용이 시선을 압도한다. 큼직한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 삼형제바위, 아찔한 수직 절벽,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듯한 촛대바위 등 기암 전시장에 온 듯 눈이 호사를 누린다. 마음에 작은 쉼표를 찍고 돌아온 듯 섬여행은 그리움을 너머 새해 새날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 정보
함께하면 좋은 곳: 승봉도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사승봉도가 있다. 모래사장이 광활한 이 섬을 승봉도 주민들은 ‘사도(沙島)’라고 부른다. 장장 4km나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은 사막의 사구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다. 승봉도에서 배를 타면 15분 정도 걸린다. 선착장도 없는 개인 소유의 섬인지라 섬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인공의 흔적이라고는 섬 관리인이 설치한 천막이 전부인 까닭에 다른 섬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을 만끽할 수 있다. 사승봉도의 매력은 해변을 뒤덮은 모래톱에 있다. 물이 들고 나면서 그 형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해 매우 신비롭다. 승봉도에서 낚싯배를 이용해 갈 수 있다.
별미: 이맘때 승봉도에서는 소라가 맛있다. 꼬들꼬들 씹히는 식감 덕분에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회로 먹어도 좋지만 숙회를 해서 먹어도 맛있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찾아가는 방법: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두 차례(오전 8시 30분, 오후 2시) 운항한다. 일자에 따라 운항 횟수가 다르니 자세한 내용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1599-5985)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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