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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인간은 ‘함께’ 아주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존재다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1년 01월호


새해가 시작된다.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면 <굿 윌 헌팅>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윌(맷 데이먼)이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찾아 허름한 차를 몰고 먼 길을 떠나는 장면.
<굿 윌 헌팅>은 미국 보스턴에서 찍은 영화다. 보스턴에는 하버드, MIT도 있지만 ‘하얀 쓰레기’라 불리는 백인 도시 빈민도 많은 곳이다. 주인공 윌도 그중 하나인데, 고아로 여러 입양 가정을 거치며 학대를 받고 자라 자신과 세상을 혐오하고 성격이 난폭하다. 내가 나빠서 처벌받았다고 세뇌됐기에 자신을 혐오하고, 의지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심한 상처를 받았기에 타인을 불신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당연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천만다행으로 윌은 천재적인 지능을 타고났다. 그 천재성을 우연히 발견한 MIT 수학과 교수는 윌을 도우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래서 동창생인 정신과 의사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자기연민에 빠진 의사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윌, 이렇게 두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한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감정적 동기가 필요하고, 그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거나 존경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이니까. 결국 발전의 가장 큰 우선 조건은 친밀한 관계인 것이다.
새해에 세우는 많은 계획이 작심삼일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롭게 설정한 멋진 목표를 달성했을 때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으리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불만족스럽기에 너무 높은 목표를 잡고, 그 목표 달성이 너무 어렵기에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사람들과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며 ‘함께’ 아주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존재다.
윌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윌이 빨리 완전히 다른,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윌은 의사 숀의 도움으로 이제 겨우 중2병을 통과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후기 청소년 시기에 막 들어선 상태였다. 처음으로 사랑에도 빠진다. 윌에게는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특성과 제한점을 갖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이 세상과 공존하기 위해 수긍해야 하는 것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은 어렵고, 그러한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윌에게 1년도 안 되는 정신치료와 긍정적인 관계들은 시간적으로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그런 윌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여자는 이미 정체성을 확립했고, 청년기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여자는 30대의 발달과제인 안정적인 사회 및 경제적 역할을 얻기 위해 서부로 떠나간다.
버스는 잘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보들은(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잃은 후에야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알게 된다. 늘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한다. 여자는 뒤늦게 자기를 찾아온 윌을 받아들여 줄까?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아닐 것 같다. 아직 청소년기 후반의 윌과 어른이 된 여자친구는 토닥거리기를 넘어 우당탕거릴 것이다. 여자가 인내하기를, 윌이 빨리 성숙하기를 바랄 뿐.
나는 내일은 더 좋은 날일 것이라고 믿는 바보 같은 낙천주의자다. 어머니 탓이다. 어머니는 “긴가민가하면 못 먹어도 고고, 내가 지면 무조건 삼세판이야!”라고 가르치셨다. 윌처럼 뒤늦게 지혜와 용기를 내 더 고생하지 않게, 버스가 떠나기 전에 내가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는 차에 올라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란다. 함께 여행하며 서로 돕고 격려하며 조금씩 더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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