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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자율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조건들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1년 02월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처럼 극한의 추위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도 아닌, 그냥 심신이 시린 어중간한 추위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2월이다. 늘 그렇듯 결국 봄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예고편이 너무 길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실제로도 별것 하지 않지만, 그래서 불안만 가중되는 고약한 2월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발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성실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런 날씨와 상황에는 영화 <원스>가 어울린다.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인 <원스>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 그냥 계속 스산한 겨울이다. 돈 때문에 빨리 찍어서 그렇겠지만, 덕분에 주인공들의 불편한 마음 상태가 더 강조돼 느껴진다. 남자 주인공 글렌은 실연 10년째인 청소기 수리공이자, 거리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다. 여자 주인공 마르케타는 1960년대의 한국 어머니들처럼 억척스럽게 집안일을 다하고 짬짬이 거리에서 꽃도 파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어릴 적 피아니스트였던, 가난한 체코에서 덜 가난한 아일랜드로 온 이민자다.
둘은 박제된 듯, 얼어붙은 듯,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있다. 자율과 자유, 열정과 능동, 성취감과 자긍심이 없는 삶이다. 2월의 온도 같은 삶이다. 자율의 교과서적인 정의는 자기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반대인 타율은 타인의 결정이나 자신의 본능적 욕구나 충동에 따라 사는 것이다. 글렌과 마르케타도 원래는 자신의 삶을 살고 이왕이면 더 잘 살려고 하나의 삶의 패턴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패턴은 효과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삶을 바꿔야 할지 모르거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변화는 마르케타가 글렌의 노래를 진지하게 듣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진지하게 들으려면 그만큼의 결핍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글렌의 외모나 가창력에 반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노래가 전달하는 감정이다. 그녀는 글렌의 노래에서 자신의 삶을 느끼고, 글렌의 마음 상태에 공감한다. 그 공감이 그녀가 글렌에게 불쑥 말을 건넬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로 더 이상 사랑은 없다고 믿었던 남자와 생활을 위해 음악이란 꿈을 포기했던 여자의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함께 음악작업을 하며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의욕과 능동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자율성이기에 외적 동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한 자발적 선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인간의 동기를 유발하는 3가지 중요한 욕구는 자율성, 유능감, 관계에 대한 욕구다. 내 삶을 살며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발전하고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결정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내 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은 헤어질 때도 성숙한 자율성을 보여준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욕망을 억제하고 옳은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인 것처럼.
자율과 자기 주도의 원동력은 결국 진정한 내 편이라 믿을 수 있고, 그 사람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랑인 것이다. 춥고 외롭고 지칠수록 소중한 사람들과 더 단단하게 연결돼야 한다. 우리 모두 부디 그러기를, 연결돼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의지가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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