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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 1음반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악의 결을 느끼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21년 02월호


직업이 음악평론가다 보니 틈이 날 때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해서 차트를 확인하고, 발매된 신곡을 쭉 들어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새롭게 차트인한 노래가 있는 반면 실패한 노래가 있고, 그 와중에 발표된 지 오래임에도 견고하게 자기 위치를 수성하고 있는 노래가 있다. 오늘은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경우에 눈길이 머물러 적어본다. 바로 악동뮤지션이다.
악동뮤지션의 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2019년 9월에 공개된 곡이다. 그러니까, 거의 2년 반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당신은 악동뮤지션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 혹시 ‘통통 튄다’거나 ‘재기 발랄하다’가 당신의 대답이라면, 미안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이 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가 수록된 음반 <항해>에 한해서는 그렇다.
이 앨범, 아주 쉽게 정의할 수 있다. 흔히들 사용하는 수식으로 ‘성숙했다’만 갖다 붙이면 된다. 한데 나는 ‘성숙’이라는 표현 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빤하고, 게으른 묘사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 앞에서만큼은 ‘성숙’이라는 단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다. 내 능력 부족인지는 몰라도 이보다 더 적확한 선택지를 발굴하지 못해서다. 그렇다. 악동뮤지션의 <항해>에는 이 남매 듀오의 음악적 깊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했음을 증거하는 곡이 여럿 담겨 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진행돼 역사로 남을 겨를조차 없는 세상, 그럼에도 이 음반은 위대한 예외로 인정받아 먼 후대에도 기억될 것이다.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굳건히 차트에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우선 이를 증거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외에도 좋은 곡이 다발이다. 서정미 넘치는 선율로 듣는 이를 부드럽게 자극하는 ‘뱃노래’, 록과의 연계를 시도한 동시에 탁월한 완급조절로 고루함을 벗어 던진 ‘더 사랑해줄걸’, 컨트리를 자기 식으로 멋지게 소화한 ‘물 만난 물고기’ 등, 곡을 설명하다가 지면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다.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고래’를 선택할 것 같다. 이 곡에서 악동뮤지션은 아날로그 감성의 어쿠스틱 기타와 클랩(박수) 비트, 휘파람 소리 등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방식으로 ‘최신 바이브’를 일궈낸다. 정말이지 이 곡을 듣고는 깜짝 놀라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저앉을 뻔했다. 솔직한 독후감이다. 가장 최신곡이라 할 ‘Happening’에서도 이런 평가는 유효하다. 어느새 그들은 굳이 절정으로 치닫지 않는다. 담백한 전개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설득력을 일궈내면서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쓱 끌어당긴다. 뭐로 보나 보통내기의 음악이 아니다.
이제 노랫말을 봐야 할 차례다. 자, ‘달’에서의 다음 문장은 어떤가.
자막 없이 밤하늘 보고, 번역 없는 바람 소릴 듣지
그런가 하면 이런 가사도 있다. ‘뱃노래’의 일부다.
몇 고개의 파도를 넘어야 하나/소금기 머금은 바람/입술 겉을 적신다/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자유하는 법을 알아
동심과 장난기로 가득했던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거기에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악의 결이 스며들었다. 음악만 놓고 보면 더 이상 ‘악동’이 아니라 대중예술가의 지위에 훌쩍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글쎄. 추측이지만 이름을 ‘악뮤’로 줄인 것도 이와 연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수준의 음악을 창조하는 뮤지션을 두고 악동이라 부르는 건 아무래도 영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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