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라이프 #키워드
‘기술’ 가고 ‘사람’ 온다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1년 02월호

 
사람이 사람과 대면할 수 없는 언택트(untact) 시대. 물리적 거리는 두더라도 심리적 거리는 좁히자는 캠페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광고, 마케팅, 서적, 공연, 라이프스타일에 한동안 강조돼왔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딥러닝 등의 차가운 4차 산업혁명 신기술보다 따스한 인간의 온도와 감성을 전하는 ‘휴먼터치’가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2021년 첫날은 ‘언택트’로 시작됐다. 새해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현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사전제작 영상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언택트 열풍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름조차 생소했던 언택트가 대세가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의 숨결을 그리워하고 있다. 2019년 KT의 조사는 기술 중심의 첨단 하이테크 시대에 편리함을 누리는 인간이 얼마나 인간적 접촉과 정에 주려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KT는 AI 스피커 기가지니에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건넨 말을 분석해 발표했는데 1위는 다름 아닌 ‘사랑해’였다. 사람들이 음성비서에게 기대한 것은 기기적 편리함이 아닌 정서적 ‘동반자’였던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몇몇 주에선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된 노년층에게 단순히 편리만 제공하는 기기가 아닌 반려견 로봇을 보급했고, 약 1년 후 이들 중 70%가 고립감이 감소됐다고 답변했다.

차가운 기술의 편리보다 따스한 마음의 감동
언택트 시대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온(ON: 연결)택트, 즉 ‘휴먼터치(human touch)’다. 휴먼터치는 언택트 신조어를 만든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이 『트렌드코리아 2021』을 통해 소개한 개념이다. 언택트 기술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조명받은 트렌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택트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니라 인간적인 접촉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휴먼터치 트렌드에 대해 『트렌드코리아 2021』에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적 센스를 기계가 결코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기화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생활로 인한 ‘코로나 블루’를 인간의 따스한 온기로 극복하자는 휴먼터치 트렌드는 국내외 주요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감을 유도하는 마케팅 포인트로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감정인식 기술이 적용된 키즈 모빌리티를 개발해 어린이 환자 치료에 시험 운용하는 등 휴먼터치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감정인식 키즈 모빌리티가 실제 치료 과정에 활용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 플랫폼을 통해 단순 음성인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기능으로 휴먼터치를 구현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해 주변 환경 정보를 확인하는 ‘빅스비 비전’이 대표적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에게 라벨, 표지판 등을 읽어줘 사물, 물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보수적 이미지가 강했던 금융 업계에도 휴먼터치 바람이 불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말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서른의 맞춤법’ 영상은 한 달여 만에 조회수 160만을 돌파하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내 집 마련, 생활비, 이직 등 30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을 담담하게 녹여내면서 감성적인 음악을 곁들인 부분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건설업계도 유튜브를 이용한 휴먼터치 마케팅을 도입했다. 포스코건설은 최근 가족들의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담은 웹드라마 <숨은 행복 찾기>를 포스코건설 유튜브 채널에 공개, 소소한 일상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관객과 대면·소통할 수 없게 된 문화 예술계의 화두도 휴먼터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신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을 선보이며 음악으로 많은 이에게 위로를 전해주고자 했다. 비록 물리적 움직임은 단절된 세상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연결돼야 하고, 이들의 노래 제목처럼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대전 서구는 지난해 말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배재대 캠퍼스에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언택트 공연을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기술이 도구로 사용되긴 했지만 감성, 힐링, 공감을 강조한 공연의 내용만큼은 순도 백퍼센트의 휴먼터치였다.


언택트 패러독스를 해소하는 인간의 손길
어느덧 우리는 접촉하지 않고 살아가는 기술이 뉴노멀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집에서 혼자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고, 업무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감성과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한다. 원격근무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조직 내에도 교류와 스킨십이 더 필요해졌다. 미국 하버드대 겸임교수이자 『조직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저자인 대니얼 골먼은 “조직의 성과에서 이성의 영향력은 20%에 불과하며, 감성의 영향력은 80%에 달한다”고 말한다.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세심하고도 인간적인 배려가 업무의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언택트의 파도 속에서는 당장 휴먼터치가 너무 요원한 이정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휴먼터치를 담아내는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위한 따뜻함’이다. 언택트 기술이 주목받을수록 오히려 접촉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만나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활 반경이 좁아졌다고 해서 마냥 우울해하기보다는 나의 몸과 심리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쁜 삶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한 템포 쉬어가며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온라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슴 뛰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해지는 사람들. 이런 ‘언택트 패러독스’를 해소하는 것은 결국 진심이 담긴 인간의 손길이다. 우리의 생각이 만나고 마음이 교차하는 곳, 그 모든 곳에 진정성 있는 휴먼터치가 존재한다면 팬데믹의 급격한 파도도 따뜻한 온기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삶은 결국 계속돼야 할 것이므로.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