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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여행하는 기쁨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02월호


죽음을 삶으로 불러오는 많은 작업이 대개 (한 시절 ‘하쿠나 마타타’와 함께 싸이월드 프로필 멘트를 장악했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럼으로써 이 유한한 삶을 제대로 살아보자’는 메시지로 귀결된다면, 케이틀린 도티의 작업들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간다. 삶의 유한성을 성찰하는 매개로서의 죽음이 아닌 순도 100퍼센트의 죽음 속으로 거침없이 성큼성큼 들어가서 우리와 죽음을 곧바로 이어버린다. 시체 하나하나를 클로즈업하며 죽음의 풍경을 생생히 펼쳐내는 그는 ‘죽음과 대비돼 또렷이 보이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삶과 연속돼 또렷이 봐야 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와 후자가 전혀 다른 접근이라는 것을 그의 책을 두 권 연달아 읽고 알게 됐다.
그가 장의 업계에서 일한 6년간의 경험(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죽음에 대한 여러 담론)을 담은 전작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 죽음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안내했다면, 그가 세계 곳곳의 죽음 의례 현장들을 찾아다닌 기록을 담은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죽음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어떤 이벤트’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물론 그 전에도 죽음을 두고 그런 식의 전복을 꾀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를 겪었지만 단 한번도 내 마음이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도티의 유쾌하고 대담한 여행기는 달랐다. 읽다 보니 어느샌가 무슨 여행계획을 짜듯이 죽은 후 나의 시체처리계획을 신나게 짜고 있었던 것이다.
장작 위에서 내 시체가 활활 타오르며 만들어내는 불꽃을 캠프파이어 삼아 친구들이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야외 화장’도 상상했다가(다소 급진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몸을 불사르며’ 친구들과 놀다 가는 마지막이라니, 즐겁지 않은가), “한 동물이 죽고 난 뒤 그 시신을 다른 동물들이 번창할 수 있게 내주는, 합리적이고도 아름다운 계약의 일부분”으로서 내 시체를 퇴비로 만드는 ‘자연장’도 상상했다가(나는 ‘죽다’를 뜻하는 여러 표현 중에 ‘expire’를 가장 좋아한다. 죽음을 그저 이번 생에서의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게 좀 좋다.), 시신을 바로 장례해서 떠나보내지 않고 미라로 만든 후 몇 년이고 원하는 만큼 한 집에 함께 살며 같은 침대에서 자고 말도 걸고 옷도 갈아입히는 인도네시아 토라자 마을의 관습을 눈물 나도록 부러워도 했다(‘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음’이 죽음의 가장 가슴 찢어지는 점인데, 이렇게 시신이라도 계속 곁에 둘 수 있다면 죽음이 지금보다는 훨씬 덜 막막할 것 같다).
신기한 건, 이렇게 두서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한바탕 죽음여행을 했을 뿐인데, 이 책을 덮을 무렵에는 어느새 나와 죽음과의 관계가 부쩍 친밀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좋은 시체가 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죽음을 가볍게(조금은 신나게)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문턱이 낮아질 때마다 갖게 되는 어떤 자유와 용기가 마음에 단단하게 닻을 내리는 것으로 이 여행은 끝나지만, 고민은 이어진다. 이번 생과 계약이 만료돼 좋은 시체로 이직하는 그날, 어떻게 죽을지, 썩을지, 썩어서 무엇이 될지. 근사한 여행이 남긴 근사한 숙제다.

몸이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혼돈스러워지고 야생의 것이 되어 해체되었을 때만 찾아지는 자유가 있다. 나는 앞으로 내 시신이 어떻게 될지 시각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보는 게 참 좋다. (......)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죽고, 썩고, 새 생명을 키울 운명이고 싶은 것인지도.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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