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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평범함은 죄가 아니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1년 02월호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 되는 법’ 강연에서 꼭 등장하는 말이다. 연사는 평범함을 거부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틀린 말이다. 세상에는 평범함을 거부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들은 소수다. 평범하지 않으려다가 실패한 사람이 이보다 몇 곱절은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절대다수라는 것이다. 아니 다수여야 한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일부의 무용담에 도취돼 실패할 확률이 높은 곳으로 발을 딛지 않을 때,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일생을 무탈하게 살아갈 때 그 사회를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평범하게 살아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너도나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의 방향이 정해지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건 ‘생각에 따라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는’ 찬반 토론 주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증거다.
생애 과정에서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죽은 학자들만 등장하는 대학의 인문학 강의에 한 번쯤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웃과 연대하고 인류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심신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불가능하다. 누구보다도 부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 따위는 없어도 되지만,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결코 좋은 사회일 리 없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틀은 송두리째 교체됐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순식간에 덕담이 되더니, ‘부자만 되면 그만인가?’라든가 ‘부자가 아닌 자는 행복할 수 없는가?’ 등을 묻고 따지는 담론들은 뜬구름 잡는 소릴 한다는 취급을 받으며 자취를 감췄다. 대학 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풍토는 강화됐고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들은 궤변가나 양산하는 곳처럼 여겨졌다. 도전정신만 나부끼더니 ‘평범’은 ‘도태’의 다른 말이 됐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특출날 것 없는 일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비하했다. 이런 분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몇 배나 더 강화됐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의 크기와 비례해 평범하다고 사람을 차별하고 특별한 것 없다고 사람을 혐오하는 정서도 커져갔다. “평범하면 살아남기 힘들죠. 남들만큼 하면 남들만큼만 사는 거죠.”라는 말을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개인을 짓누르는 나쁜 담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날카롭게 만든다. 정당한 투쟁을 하는 임금 노동자들을 ‘편한 것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인 것처럼 바라보게끔 하고 부동산 광풍의 사회를 비판하는 자에게 ‘남들 고민할 때 놀고먹고 뒤늦게 투정 부리냐’면서 빈정거릴 수 있는 토대에는 평범함은 조롱받아도 된다고 여기는 시대 정서가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자기소개서 작성을 무서워하는 학생들을 자주 봤다. 자신을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포장해야 하고 위험한 외줄 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범함을 ‘마치 타고난 성격인 것처럼’ 드러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삶이 너무나 밋밋해 보이는 걸 걱정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굉장히 잘못 산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사회를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건 자유다. 다만 ‘좋은 사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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