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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까다로운 미국 이민, 변호사 대신 AI 도움받아 준비한다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1년 03월호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미국 경제성장에 이민자들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기 때문에 반이민 정책을 펼친 트럼프 집권기간에도 이민법시장은 연간 2%씩 성장했을 정도다. 취업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비자가 발급되고 미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주권만 연간 100만 건이 발급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미국 이민국(USCIS)을 통한 신청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원성이 자자하다. 영주권 신청서 작성이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대부분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를 들여 이민변호사를 쓴다. 신청한 다음에는 언제쯤 비자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빠르면 3개월 만에 나오기도 하지만 2년이 걸려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한국인 창업가가 있다. 역시 미국 이민자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 창업했다. 그리고 앱을 출시해 이제는 10만 명이 넘는 미국 이민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성과를 올린 로플리의 안준욱 대표를 만나봤다.

머신러닝 통해 영주권 발급 시기, 승인확률 등 예측
물리학을 전공한 안 대표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인공태양 개발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이민변호사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인공태양 프로젝트를 15년간 연구했습니다. 태양의 에너지 생산원리인 핵융합을 이용해 안정적이며 깨끗한 미래 에너지인 인공태양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 연구가 뭔가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어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연구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던 그는 2016년 머신러닝이라는 AI 기술에 눈을 떴다. 데이터를 수집해서 기계에 학습시키면 정확한 예측을 해주는 것이다. 이 신기한 기술을 알게 될수록 물리학 연구뿐 아니라 뭔가 현실 문제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저도 영주권을 받느라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언제 나올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죠. 마침 이민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와 대화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영주권 승인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분석해 보면 영주권 발급 일자와 승인확률 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이민국에 영주권 신청서류를 제출하면 접수번호를 받게 된다. 이 접수번호를 이민국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신청서가 심사 중인지, 추가자료를 요청하는지, 인터뷰 날짜가 잡혔는지 등을 알려주는 다양한 업데이트 메시지가 나온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영주권 신청자의 국적, 직업, 나이, 성별, 신청 지역 등에 따라 결괏값이 다르다. 이민국은 예상 발급 날짜나 향후 진행 프로세스를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고, 그저 기계적인 짧은 업데이트 메시지만 줄 뿐이다.
안 대표는 수많은 영주권 신청자의 다양한 조건 데이터를 취합해서 머신러닝으로 분석하면 나름대로 정확한 영주권 발급 날짜와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로 2017년에 창업을 결심했다. 그런데 그가 창업하기로 결심한 곳은 거주지역인 미국 뉴저지주가 아니고 그의 모교가 있는 한국 대전이었다. 왜 그랬을까.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분야 자체가 데이터만 모으면 어디에서 분석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인재들이 모여서 분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인공태양 프로젝트로 한국에 자주 출장을 오면서 한국의 창업생태계가 아주 잘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엔지니어 인건비가 말도 안 되게 비싼 미국보다 한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 시절 절친했던 후배가 대전에서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를 설립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됐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다. 후배의 조언으로 초기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얻고 1억 원을 투자받아 2017년 12월 로플리를 정식으로 대전에서 설립했다. 정부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도 선정됐다.

2분기 중 영주권 자가신청서비스 제공… 맞춤형 신청전략 제시 등으로 차별화
2년 가까이 이민 데이터를 모으고 알고리즘을 가다듬은 다음 2019년 10월 ‘로플리 케이스 트래커(Lawfully USCIS Case Status Tracker)’라는 앱을 내놨다. 영주권 신청자가 자신의 국적·직업 등 20여 개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현황을 추적하고, 대략적인 발급 날짜와 승인확률을 예측해서 알려주는 서비스다. 데이터가 많이 모일수록 예측이 더 정확해진다.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10만 명의 이용자가 등록해서 약 18만 건의 데이터가 모였다. 지난 11월부터는 프리미엄 서비스로 유료화도 시작했다. 10달러를 내면 보다 정교하게 고객이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신청자 중에서 어느 정도 순번에 있는지 알려준다. 변호사와 상담이 필요한 이용자를 위해서는 앱 내에서 이민변호사와 화상으로 1대1 상담을 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 중이다.
로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혁신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미국에서 영주권 신청을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이민법상의 요건 검토와 함께 적절한 신청전략을 세우고 신청서와 보충자료를 실수 없이 준비해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스스로 신청서를 완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이민자가 건당 5천 달러에서
1만5천 달러의 비싼 비용을 내고 이민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이에 로플리는 올해 2분기 중에 이민자들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로플리 사이트에서 직접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영주권 및 시민권 자가신청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특히 여권, 비자, 출입국 기록서식, 고용허가서, 세금보고서 등 관련 서류를 자동으로 인식해 입력해주는 등 기능 차별화를 준비 중이다. 이민변호사를 쓰는 것보다 5분의 1 이하의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시장에는 몇몇 경쟁 스타트업이 비슷한 자가신청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로플리는 이들과 차별화를 위해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고객에게 맞는 신청전략을 제시하고, 변호사 화상상담, 신청서 제출 후 현황 추적과 수속기간 예측 정보 등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안 대표는 “미국의 이민법시장은 약 7조 원 이상으로 한국 전체 법률시장보다도 크다”며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들을 충성고객으로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다른 문제로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법률 분야를 혁신하는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AI로 무장해 서류 검토, 판례 분석 등을 자동화해주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민법 분야에 특화해 미국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로플리가 향후 얼마나 성장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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