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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플때, 힐링푸드
외식, 기쁨을 주고받는 마음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탐식생활』 저자, 콘텐츠 에이전시 ‘포르테’ 대표 2021년 04월호


“너무 맛있어!”
“전문가가 주방에서 갓 만들어준 요리잖아. 이게 진짜 맛있는 맛이지!”
“먹고 설거지 안 해도 돼! 남이 치울 거잖아! 이것 봐, 어쩜 포크에 얼룩 하나 없어!”
“와인잔 투명한 것 봐! 내가 닦은 거랑 너무 달라!”
“외식 최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먼지 한 톨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 잔에 와인도 마셨다. 우리는 실로 오래간만에 외식했다. 나는 반년 만, 일행은 석 달 만이었다. 몸에 피가 다시 돌고 온기가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육성으로 환희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메마른 영혼이 뱉는 탄성이었다. 순수한 기쁨이었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음식 산업혁명
부지런히 식당을 탐사하며 다양한 것을 먹고 쓰는 일이 푸드 칼럼니스트의 주요한 일 중 하나일진대, 취재가 멎었다. 취재할 곳이 멎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 준비하던 새 연재는 식당의 삶을 돌아보는 주제였다. 당시는 글쟁이가 한가롭게 식당의 지난 삶에 대해 얘기할 분위기가 도무지 아니었다. 식당의 당장 오늘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취재 중이던 한 식당은 국립중앙의료원 옆에 있었다. 코로나19 레이스 출발점에서부터 큰 활약을 했던 보건복지부 산하 병원. 식당은 문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텅 빈 식당에 앉아 맛의 비결과 삶의 비책 같은 얘길 묻는 일이 피차 얼마나 민망한 소모였을까. 더구나 그 칼럼을 보고 사람이 몰려도 문제, 안 몰려도 문제. 멎은 김에 멈췄다.
처음엔 꽤 신이 났었다. 일을 안 하니 일단 신이 났고, 집에 갇혀 있는 생활은 나로선 그리 손해 볼 게 없었다. 그간 해온 일 덕분에 꽤 먹을 만한 음식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았고, 그간 무의미한 관계에 투자해야 했던 시간이 오롯이 여가 시간이 되자 이것저것 뚝딱 만들어 보는 기쁨에 흠뻑 빠졌다. 주방을 어지럽혀가며 거창한 음식을 만들어 잘 차려 먹고 치우고 반질반질하게 청소까지 해놓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바쁜 동안 존재조차 잊고 방치해 뒀던 재료들을 한껏 활용해 피낭시에(financier) 같은 구움 과자를 만드는 취미생활을 즐겼다. ‘냉동 화석’이 됐던 쑥과 버터로 구운 피낭시에는 그중 걸작이었다.
이와 같은 사정은 다들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커피 믹스 천 번을 저어야 하는 달고나 라테가 지난해 봄에 유행했고, 트렌디한 식당에서 찍은 셀피(selfie)가 올라오던 SNS 피드에는 #집밥의소중함 #주부모드 #혼밥 같은 해시태그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마치 취미생활처럼 식사노동을 즐기던 이들은 어느덧 해시태그를 갈아타기 시작했다. 유명 식당의 간편식, 배달·포장 음식 인증샷이 자리를 채웠다.
1년 동안 코로나19가 불러온 작은 산업혁명이 이행됐다. 특히 음식 관련한 산업에서는 모든 것이 뒤집히고 흔들리는 경천동지가 일어났다. 식당들은 멋진 인테리어보다는 멋진 배달 포장 용기에 투자하게 됐고, 새로운 메뉴를 고심하기보다는 이미 잘 나가는 메뉴를 이마트 간편식으로 출시할지 마켓컬리 간편식으로 출시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줄 서던 식당 밖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늘어선다. 계절마다 장만하던 외출복 대신 편안한 실내복을 사고, 새 구두 대신 근사한 그릇과 조명을 사게 된 사람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고립의 1년 동안 간편식시장은 전기의 발명 못지않은 폭발적 발전의 계기를 맞았고, 배달 대행과 새벽배송 업계의 파이도 같은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나는 그 산업혁명 틈바구니에서 식욕을 잃었다. 더 이상 혼자 먹을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하고 치우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명절 증후군인 양, 식사노동은 기피하고 싶은 두려운 것이 됐다. 그러자 나타난 선택지는 배달·포장 음식이었다. 내 경우엔 맛이 문제였다. 배달·포장 음식 특유의 불쾌감이 있다. 우선 온도의 문제다. 음식마다 적당한 온도가 있다. 3미터 떨어진 주방에서 갓 조리해 나온 상태가 아닌 한 어쩌지 못하는 한계다. 기름 먹은 포장 용기 냄새도 유쾌하지 못하다. 한두 번이야 즐겁게 먹겠지만, 매일 먹자면 포장 용기에 든 미지근한 음식이라는 존재 자체가 식욕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다. 퇴근길마다 그리워하던 식당에 들러 음식을 포장해 가거나 귀가 시간에 맞춰 배달도 신나게 시키곤 했지만, 곧 시들해졌던 이유다.

포장음식과 간편식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감동
간편식 덕분에 고난도의 요리를 손쉽게 해 먹기도 하지만,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든 최소한의 조리가 필요한 것이든 공장에서 나온 음식은 어디까지나 ‘공장 맛’이 날 뿐이다. 식당이나 가정에서 조리하는 것과 공장에서 조리하는 것은 물리적·화학적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 온도와 기압이 다르고, 맛을 구성하는 방법도 다르다. 매일 먹기엔 물린다. 보상이 시원찮으니, 먹기 위해 해야 하는 조금의 식사노동조차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엄청난 양의 포장 쓰레기도 식욕을 떨어뜨렸다. 기름기가 스민 플라스틱 용기를 닦고 분리 배출하는 일은, 요리하며 나온 조리도구와 식사할 때 사용한 도자기 접시 모두를 닦는 것만큼의 노동을 요구한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쓰레기라는 점도 결국엔 심리적 식욕을 무너뜨렸다. 살아간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세상에 남길 권리가 내겐 없다.
문득 터져 나온 “외식하자!”라는 말 한마디로 일행과 나는 소풍 전날 초등학생처럼 설레는 마음이 됐다. 간만에 외출복을 고르고 먹고 싶은 메뉴를 고심하며 식당을 예약했다. 서울 서초구의 ‘메종조(Maison Jo)’라는 델리 겸 와인바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온 샤르퀴트리(charcuterie; 프랑스식 소시지, 햄 등 육가공품의 통칭) 셰프와 페이스트리(pastry) 셰프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맛을 물씬 살린 각종 요리와 디저트까지, 집에서는 절대 낼 수 없는 전문가의 맛을 음식에 맞는 제 온도로 즐긴다는 것은 새삼 감동적인 일이었다. 돼지 귀가 듬뿍 들어간 테린(terrine)은 뜨겁게 구워 달곰한 제철 시금치를 듬뿍 곁들여냈고, 피낭시에는 당연히 내가 구운 것보다 세 배는 맛있었다. 집에서는 스트레스가 된 식사노동을 남에게 우월한 완성도로 맡기는 값비싼 쾌적함에 우리는 시끄럽게 감탄을 쏟아내며 먹고 마셨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겠지만 그토록 소중한 내 집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기쁨이 바로 외식이다. 한 끼의 식사를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손님의 마음과 가능한 모든 즐거움을 주려는 식당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음식을 먹기만 해서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이 ‘외식’이라는 두 글자에 새겨져 있다.
올봄엔 고된 1년을 잘 견뎌낸 사랑하는 식당들을 차근차근 그러나 조심스레 다시 해후할 생각이다.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여 오르는 소머리곰탕도, 유산지를 덧댄 종이 용기가 아닌 오붓한 접시에 담긴 따스한 파스타도 모두 그립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와 같은 기쁜 얼굴을 하고 있을 친구들도 모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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