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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오겠습니다
바다를 벗 삼은 아름다운 수목의 향연
임운석 여행작가 2021년 04월호
 
바닷가 한편에 목련향이 그윽하게 번지는 수목원이 있다. 한반도 땅에 핀 대부분의 목련꽃이 자취를 감춘 이맘때 목련꽃이라니. 때를 잘못 맞춘 게 아닌가 싶지만, 태안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4월부터 여름까지 목련꽃의 그윽한 향을 맡을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닷가를 끼고 조성된 덕분에 운치가 남다르고, 식재된 나무와 꽃이 1만6,752분류군에 달해 국보급 수목원으로 알려져 있다.

수목원을 사랑한 푸른 눈의 한국인
천리포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수목이다. 실제로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애써 풍성해 보이려고 식물을 다닥다닥 붙여 심거나 줄을 맞추지도 않았다. 식물이 여유롭게 숨 쉴 수 있도록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것이다. 또 식물의 외형을 변형시키는 가지치기를 최소화하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화학비료나 농약 사용도 자제한다. 길을 만들 땐 나무를 피해 만들고 수형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베지 않는다. 이처럼 식물의, 식물을 위한, 식물에 의해 가꿔진 수목원이 천리포수목원이다. 여러 수목 가운데 이곳만의 자랑인 840분류군의 목련이 있다. 목련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기껏해야 자목련, 백목련 정도만 머리에 떠오른다. 천리포수목원에 식재된 목련은 불칸 목련, 노랑초롱 목련, 로열플러시 목련, 도나큰별 목련, 빅버사큰별 목련 등 이름부터
낯선 희귀한 목련들이 즐비하다. 이름이 제각각이니 향기도, 꽃이 피는 시기도 제각각이다. 이런 연유로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여름까지 목련꽃을 볼 수 있다. 특히 불칸 목련은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수종이다. 천리포수목원의 랜드마크 격인 큰 연못 정원 앞에 서 있는 불칸 목련은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붉은색 목련인데 키가 3층 건물만큼 높다.
연못 맞은편에는 초가를 이은 듯한 민병갈 기념관이 보인다. 천리포수목원의 설립자 민병갈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한국과 한국의 자연을 사랑한 푸른 눈의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미군 해군 장교 출신으로 1946년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개인재산을 털어 1962년에 대지를 매입하고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후 1979년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라는 미국 이름을 버리고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그는 수목원을 장장 40년 이상 가꿨다. 식물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 덕분에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은 1만6천여 종류의 식물 등이 사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결과 천리포수목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 반열에 올랐다.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의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파도 소리와 아름다운 정원의 하모니, 밀러가든
천리포수목원은 총 7개의 관리지역이 있다. 그중 밀러가든이 첫 번째 정원으로 2009년에 개방됐다. 밀러가든은 솔바람길, 오릿길, 민병갈의 길, 소릿길, 수풀길, 꽃샘길 등 6개의 구역, 27개의 테마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매표소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이 솔바람길이다. 길을 따라가면 남이섬 수재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민병갈 원장과 남이섬 설립자인 수재 민병도 선생의 우정을 기리는 정원이다. 남이섬 형태의 정원 중앙에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을 상징하는 나무가 식재돼 있다. 솔바람길을 접한 왼편 해안 산책로는 해안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오솔길과 데크길로 꾸며졌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 같은 갈매기 소리가 뒤섞여 바다에 자리한 수목원다운 정취를 자아낸다. 서해 낙조가 아름다운 노을 쉼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나무 의자는 특별한 힐링을 선사한다. 특히 해 질 녘에 마주하는 서해의 석양은 잊을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동백나무원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해변 대문이 보인다. 수목원 조성 초기에 민병갈 원장이 천리포해변으로 가기 위해 만든 대문이어서 의미가 깊다. 천리포해변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에 서면 손에 잡힐 듯 낭새섬이 지척이다. 원래는 닭섬이라 불렀지만 섬 낭떠러지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낭새’라고 불리는 바다직박구리를 모티브로 낭새섬으로 고쳐 부른다. 조수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면 낭새섬까지 길이 열린다. 천리포수목원이 관리하는 비공개 지역으로 상록활엽수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구석구석 숨은 보물을 찾아
천리포수목원의 밀러가든은 이방인이 가꿨지만 전혀 이국적이거나 낯설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한국적이다. 큰 연못과 작은 연못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석탑과 연꽃이 자리하고 그 사이에 시골 정취가 물씬한 논이 있다. 이 논은 천리포수목원 직원들이 매년 봄에 모내기를 하고 가을에 추수한다. 그 옆에 초가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민병갈 기념관과 밀러가든 갤러리가 있다. 이 구역이 민병갈의 길이다. 민병갈은 2002년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태산목 아래 수목장을 치렀다. 민병갈의 길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인상이다. 민병갈 기념관에서는 민병갈 원장의 영상과 자필 편지, 도서를 비롯해 수목원의 사계절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 중앙 큰 연못 둘레를 따라 오릿길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사는 흰뺨검둥오리의 주요 서식지인 큰 연못과 습지원을 돌아보는 코스다. 매년 부화기에는 일부 지역을 통제해 오리들이 어린 생명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해서 오릿길이라 부른다. 생전에 민병갈 원장은 흰뺨검둥오리를 집무실에서 쌍안경으로 관찰했다고 한다. 그만큼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족으로 여겨 보호하는 데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다.
사계절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 꽃샘길이다. 이른 봄에 크로커스, 수선화를 시작으로 연분홍으로 물드는 벚꽃, 가을이면 애기동백, 겨울에는 남천, 풍년화 등 샘이 날 정도로 화사한 꽃과 열매의 향연이 펼쳐진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장 아늑하고 고요한 길은 수풀길이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이고 발아래 잘게 부서진 나무껍질이 깔려 있어 산책하는 맛이 남다르다. 가을철에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화살나무와 단풍나무가 색감의 포인트를 더한다.
좀 더 호젓한 길을 걷고 싶다면 소릿길이 좋다. 입구와 가장 먼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다. 소릿길은 클레마티스원, 수목원 유일의 유리온실, 암석과 억새가 조화로운 억새원으로 나뉜다. 그중 클레마티스원은 ‘처녀의 휴식처’라는 별명을 가진 덩굴식물 구역으로 무성한 덩굴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관람을 마치고 되돌아 나온다면 수풀길을 지나 솔바람길의 바람의 언덕과 해변 대문 길을 걸어보자. 우거진 곰솔이 내뿜는 솔향과 함께 바다 향이 버무려져 특별한 운치를 자아낸다.  

 
+ 여행 정보
함께하면 좋은 곳
: 산두리해안사구는 사막처럼 넓게 펼쳐진 모래벌판이다. 이곳은 육지와 바다 사이의 생태적 완충지역으로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대의 모래언덕이다. 이곳에 서면 사막에 온 듯 이국적인 모습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멀리 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영화나 드라마의 사막 장면에 온 듯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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