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독서의 문장들
우리가 지금 반드시 들어야 할 목소리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04월호


교보문고에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뒤에 올 여성들에게, 혹은 동료 여성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한 권 선정해 달라고 했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크 Thick』를 골랐다. 읽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 책에 몇 번씩 강타당한 부위가 여전히 얼얼하던 시점이었다(물론 지금도 무척 그렇다). “인종, 젠더, 자본주의에 관한 미국에서 가장 대담한 사상가”라고 불리는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이, 미국에 사는 흑인이자 여성이자 남부의 아주 전형적인 가난한 흑인 이주가정 출신이자 약간의 신체적 장애 보유자라는 약자성이 겹겹이 겹치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써 내려간 여덟 편의 글은 우리를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문제들 앞으로 계속 데려간다.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태생적으로 취약한 존재인 흑인 여성은, 그런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 반기를 들고 평등을 부르짖은 두 운동,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운동과 (흑인 남성 중심의) 민권운동에서마저도 철저히 배제되고 차별받아 왔다.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흑인 여성의 삶이란,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 징후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통증을 호소해도 흑인 여성의 말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병원으로부터 적합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삶이다.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세계적인 스타도, 코텀 같은 지식인도 예외가 아니다.
코텀이 인종차별적 편견이 빚어낸 의료적 방치를 피하지 못해 결국 유산을 하고 죽은 딸과 대면하는 데까지 이르는 과정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뛰어난 의료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분만 도중 죽어가는 흑인 여성의 수가 훨씬 가난하고 식민지화된 나라의 산모 사망률과 비슷하고,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임신 중 혹은 출산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할 확률은 백인 여성에 비해 243% 더 높다’는 데이터와 함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마음을 찢는 충격이다.
이런 상황은 그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된 경우 더욱 복잡하게 작용한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에 대해 법이 얼마나 무관심한지”,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피해자임을 인정받는 것은 백인 여성에게조차 가혹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에 흑인 여성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된다. 게다가 피해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행정적 증거로서 채택되는 것이 의료진이 육안으로 확인한 멍과 멍이 든 부분을 카메라로 찍어 남긴 사진이라는 규정은, 피부색이 어두워 멍이 잘 식별되지 않는 흑인 여성이 폭력을 증명할 수 있는 확률을 큰 폭으로 감소시킨다는 대목에 이르면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처럼 나름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규정이나 통념이 사실 어떤 집단의 입장을 완전히 배제한 부당함의 산물이라는 것을 코텀은 하나씩 차근차근,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떻게 여성들을 옥죄는지, 미국의 저소득층 흑인들이 왜 과시적 소비를 하는지(힌트는 아래 인용에 있다) 등의 문제까지 아우르며, 통렬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도 K마트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옷만으로도 단정한 복장을 갖출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서 본 적이 있다. (……) 단정한 용모만으로도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성공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p.187

여성의 날 이벤트로 이 책을 고르면서 덧붙인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통념을 깨는 통찰을 한 번 더 깨는 얼얼한 책. 세상을 보다 제대로 감각하고 싶다면 반드시 들어야 할 목소리.” 그렇다. 정말 ‘반드시’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