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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게임개발자가 만든 눈앞의 수술실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1년 04월호

 

19년간 게임개발자로 일하다 의료 스타트업 창업자로 변신한 인물이 있다. 180도 다른 분야인 것 같은데 게임을 개발하며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의사들이 수술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수술 시뮬레이터 개발에 나선 것이다. 항공기 조종사들이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으로 비행기 조종술을 익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가상현실(VR) 기술로 의료교육을 혁신하고자 하는 서지컬마인드의 김일 대표를 만나봤다.
김 대표가 가지고 온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헤드셋을 쓰자 눈앞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홀로렌즈는 혼합현실 기기로 안경을 통해 보는 실제 개체에 3D 이미지를 겹쳐서 볼 수 있다). ‘혈관’ 버튼을 누르자 사람 안면에 있는 온갖 혈관과 근육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런 이미지를 실리콘으로 만든 얼굴 모형에 겹쳐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실감나게 의료훈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게임개발자가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어낼 생각을 했을까.
“고등학생 때부터 게임개발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고교 때부터 인생의 진로를 정한 김 대표는 엠게임 등 국내 주요 게임 회사에서 19년 동안 다양한 게임을 개발했다. 평소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이 많던 그는 VR 기술에 주목했다.

초보 의사들에 VR 기술 통한 수술실습 기회 제공
“VR 기술에 매력을 느껴 이것으로 창업을 하고자 도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분들과 이야기가 돼서 어린아이들의 집중력 향상을 위한 솔루션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시장을 처음 접하게 됐다. 하지만 새로운 의료 솔루션을 만들어도 의료수가를 인정받지 못하면 병원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복잡한 의료시장에 맞는 솔루션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VR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2016년 한 제약회사의 초대로 그 회사 임원들에게 VR 기술에 대해 강연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난 한 투자자에게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신과 치료에 VR 기술을 적용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외과 수술에 VR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이 문제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2017년 서지컬마인드를 설립했다. 그가 파악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의사들은 수술 기술, 즉 ‘술기’를 갖춰야 합니다. 안정적인 술기를 갖추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은 최소 1만5천 시간, 거의 4~5년 동안 매일 수술을 해야 하는 정도의 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젊은 의사들이 이런 실전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 우선 환자들은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에게 수술받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젊은 전공의들은 수술실습 기회가 부족하다. 카데바(시신) 기증 부족 문제로 수술연습을 하기도 쉽지 않다. 병원 입장에서도 카데바나 실험동물을 이용한 실습은 실험전용 냉동고와 냉장고, 멸균장비 준비와 통제구역 설정, 실습 뒤 소각 위탁 등 복잡한 과정과 높은 비용이 들어가 쉽지 않다. 게다가 주 80시간 근무제로 전공의들의 야간 응급실 근무시간이 줄면서 현장 경험을 축적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한다. 제3세계 국가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수술경험을 축적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사실은 의료윤리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의학교육에 시뮬레이터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가상으로 수술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비입니다. 인명사고의 위험 없이 초보 의사들이 술기를 연마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의학 시뮬레이션 실습 수요는 많아지고 있지만 제품 수도 적고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특정 수술에 맞춘 시뮬레이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특수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단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유지보수 비용도 비싸다. 예를 들어 VR매직이라는 독일 회사의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터는 초기 세팅비가 대당 5억 원이다. 여기에 매년 수천만 원 이상의 유지보수 비용을 내야 한다.

범용 VR 장비와 SW 등 기존 기술 활용해 시뮬레이터 비용 낮춘 것이 경쟁력
김 대표는 VR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VR 기술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게 대체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나와 있는 범용 VR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 기존 기술을 활용해 훨씬 낮은 비용으로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데 도전한 것이다.
“의학교육에 시뮬레이션을 도입할 경우 인명사고를 줄이고 수치화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됩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카데바를 이용한 실습보다 훈련비용을 훨씬 낮출 수 있습니다.”
교육 내용이 영상 콘텐츠로 남아 반복적인 이용도 가능하다. 교육 담당자가 현장에 참여하지 않아도 비대면으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되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적합한 의료교육 방법이 됐다.
다년간의 개발 이후 서지컬마인드는 이 기술을 우선 미용성형에 적용했다. 실리콘으로 만들어 피부의 물성을 재현한 얼굴 모형에 VR 헤드셋을 쓰고 성형수술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얼굴에 주사 바늘을 찌를 때 혈관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뮬레이터를 쓰면 주사기 바늘을 0.1mm 정밀도로 실시간 추적하면서 인젝션(주사)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국내 미용성형 병원들이 이 솔루션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백내장 수술도 마찬가지다. 눈의 얇은 수정체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과정을 VR 헤드셋을 쓰고 실리콘 안구와 실제 수술도구를 통해 연습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초기 하드웨어 세팅비는 2,500만 원, 연간 구독료를 1,500만 원으로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시뮬레이터를 통한 수술연습이 실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연세대 보건대학원 윤상철 교수와 함께 논문을 준비 중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훈련한 의사와 서지컬마인드의 솔루션으로 훈련한 의사들이 교육완료 후 실제 백내장 수술을 수행하게 한 뒤 결과를 비교평가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게임업계에서 3D 콘텐츠를 오랫동안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수술도구 사용과 움직임을 고정밀로 재현해 나갈 계획이다.
“3D 콘텐츠는 개발이 쉽고 빨라서 의료 솔루션을 인체 전 분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 범용 VR 하드웨어를 쓰기 때문에 실리콘으로 만든 인체모형만 매번 바꿔주면 됩니다.”
서지컬마인드는 미용성형과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터 다음으로 복강경 수술훈련 시뮬레이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에 VR 시뮬레이션을 접합하는 것, 장기·피부·혈관 등의 인체조직과 그에 대한 순환 및 움직임을 디지털 상에 재현하는 가상(virtual) 환자 프로젝트 등 의료의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 나갈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투자유치를 마치고 국내 병원에 솔루션을 판매해 본격적인 매출을 올려야 한다. 무척 어려운 도전일 텐데 제품을 설명하는 김 대표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서지컬마인드가 앞으로 의료 시뮬레이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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