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김창기의 영화상담실
어른이 되는 과정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1년 04월호


벌써 4월이다. 4월이면 사이먼 앤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을 한번은 들어줘야 한다. “4월이 오면, 냇물이 봄비로 넘실거리고 봄기운이 터질 듯할 때, 그녀는 나를 찾아올 거야.” 스리핑거 전주로 얼어붙었던 냇물이 녹아 졸졸 흐르는 초봄의 풍경을 그려준 후, 사이먼과 가펑클은 담백한 화음으로 계절의, 인생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랑과 삶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노래는 영화 <졸업>에 삽입된 노래다. 1967년에 개봉된 <졸업>은 더스틴 호프만을 명배우의 대열로 올려놓은 영화다.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한 주인공 벤은 부모의 기대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이다. 그런데 이제 부모의 지시가 아닌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야 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삶의 방향성과 목표에 대한 결정을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몸은 다 컸는데 마음은 아직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청소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영장에 떠 있는 튜브에 누워서 천천히 썩어가는 나뭇잎 같은 정지된 생활을 반복하며 ‘정체감의 유예’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벤은 성 파트너인 이웃집 로빈슨 부인의 딸, 자기 또래인 일레인을 사랑하게 된다. 줄거리로만 보면 완전 막장 드라마다. 특히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로빈슨 부인으로 나온 앤 벤크로프트의 유혹적인 스타킹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일레인으로 나온 캐서린 로스의 아름다움도 수많은 꿈을 꾸게 만들었었다.
‘April Come She Will’은 주인공 벤이 사랑하는 일레인의 어머니와 밀회를 반복하며 일레인에게 더욱더 다가갈 수 없게 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 뒤로 흐른다. 벤이 원하는 것은 성적 탐닉의 늪에서 벗어나 사랑과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가 없는 벤은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쪽으로, 수동적으로 이 세상에 길들여지는 쪽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이와 같이 어떻게 하지 못하고, 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진’ 정체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회의하고 후회하게 된다.
영화적 완성도와 결부된 동화적 구조는 많은 관객을 열광하게 하지만, 동화적 구조에 필수적인 이분법은 세계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세계의 진실이란 언제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법인데 동화는 그것을 하나의 면, 하나의 층으로만 그려내야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졸업>은 좋은 영화다. 영화가 철학을 담아내지만 철학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좋은 영화다. 일면적 세계 해석을 통해, 그 두드러짐을 통해, 그 결여를 통해 오히려 세계를 성찰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남성 중심적이란 한계를 갖지만 무엇보다 청춘의 ‘통과의례’의 전형성을 창출했다는 측면에서 영화사적 의의를 지닌다. 50년이 더 지났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매혹적인 영화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영화음악 또한 한몫했지 싶다.
왜곡되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뇌와 가슴에 봄이 들어올 것이고,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삶에는 더 많은 음표와 느낌표가 생길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봄이 왔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