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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공공주택은 ‘허접’하지 않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1년 05월호


가족 모두가 차를 타고 출근과 등교를 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선 아침 시사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유명 건축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짚어보는 전문가로 출연했다. 조합이 얼핏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사업선정의 투명성, 건축의 전문성 등 본인이 경험한 공기업의 폐쇄성을 말하는 그런 시간이려니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등장한다. “지금 지어진 아파트를 보면 LH나 SH 같은 데서 만든 단지들이 제일 허접하잖아요.”
망설임 없이 등장한 ‘허접’이란 표현에 차 안에는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임대아파트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수치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많은 것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아파트 주변엔 ‘임대주택 반대’라는 현수막이 늘 나부꼈다. 딸은 이를 더듬더듬 읽으며 한글 공부를 했다. 가끔 묻기도 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저 사람들이 반대를 하냐고. 사람들의 가혹함을 마주하는 불쾌감은 참으로 잦았지만, 저렴하게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주거의 안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여러 좋은 추억으로 불편함을 희석시키며 버티고 버텼다. 단 한 번도 그 공간과 그 공간에서의 삶을 누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차별의 씨앗은 단어 하나로부터 출발한다. 저기서의 허접이 그저 ‘아무래도 민간아파트에 비해 긴장도가 떨어져서 발생하는 문제겠죠’ 정도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거다. 하지만 일상에서 ‘임대주택’과 ‘허접’은 단순히 건축물 자체의 품질을 왈가왈부하기 위해서 묶이는 게 아니라, ‘개인’을 정교하게 짓밟는 맥락과 연결된다. 임대주택 설립을 반대하고, 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놀이터에 ‘임대주민 사용금지’라고 팻말을 박고, 임대 쪽 아이들의 학교배정을 트집 잡는 데 ‘허접’이란 표현은 근거이자 연료로 사용된다. 사람을 ‘허접하게’ 대하는 게 당연해지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에피소드조차 ‘임대라서 그래’라고 인지돼 혐오는 정당화된다. 주민들끼리 다툼은 전국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임대아파트에서의 갈등은 더 도드라지게 분석되고 기억된다.
물론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돼야 하는 건축물의 특성상 여러 하자가 있을 순 있다. 그런데 좀 느슨하게 만들어졌다 정도로 표현하면 될 것을, 거주자의 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분노할 수 있는 이유는 ‘임대’, ‘공공’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표출하는 게 한국에서 자연스럽기 때문일 거다. 공공주택이 캐슬처럼 보이진 않는 건 아파트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인데, ‘공공’이란 말만 들어도 저주하고 싶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부정적 묘사‘부터’ 던져놓고 나중에 어울리는 사례를 결합시키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가 공공주택 공급으로만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공주택 비율은 8%에 불과하다.) 이 정책의 한계는 누구나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마치 공공은 근본이 틀렸고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건 옳지 않다. ‘민간에 맡기면 알아서 경쟁력이 생기고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추임새도 여기저기에서 등장하지만,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기에 이 나라가 부동산 공화국이 됐고 그 연장선에 이런 비리가 터진 거 아닌가?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고 성실히 저축하면 내 집 장만할 수 있죠?”라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것, 이게 바로 ‘알아서 된다’는 시장의 현실 아닌가.
공공‘정책’은 항상 검증받아야 하지만 ‘공공’은 조롱받아선 안 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공공은 늘 빈민구제용 정도의 의미로만 사용되면서 하찮은 느낌으로 포장됐다. 그러니 시장기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공공주택조차 벌레취급을 당한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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