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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어렵게만 느껴졌던 과학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보고 싶다면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05월호


가끔씩 친구들과 만약에 스무 살로 되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하지 않고 싶은지에 관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다 같이 40대가 되고부터는 ‘서른 살로 되돌아간다면’으로 질문이 바뀌었는데, 굳이 질문을 수정하면서까지 40대에도 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우리 스스로도 놀란다.) 사실 저런 질문은 현재의 삶에서 어떤 결핍을 느끼는지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불변하는 답 한 가지가 있으니 ‘스무 살 직전인 고등학교 3학년까지 죽 공부해 왔던 흐름을 이어 살려 수학과 과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전공으로 문과를 택한 친구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나 역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내 삶에서 수학과 과학을 싹둑 잘라내 버렸고 그때는 그것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잃어버린 건 단지 수학과 과학이 아니라, 수학적·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눈 하나였다는 것을, 수학과 과학만이 열어 젖힐 수 있는 무궁무진하고 경이로운 어떤 세계였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특히 과학 앞에서 나는 늘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과학책을 사서 읽고, 과학기사도 꼼꼼히 읽고, 과학 잡지를 구독해서 읽기도 했지만, 기초문법을 전혀 모른 채로 유행하는 팝송만을 따라 부르는 듯한(물론 이런 방식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니까 사상누각만을 매번 높이 쌓는 기분이어서 찜찜했다. 트렌디한 과학지식 기저에 깔린 어떤 ‘기본기’에 해당하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저런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의외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여러 문제의 대부분이 과학기술과 얽혀 있고 그것에 관해 나름의 판단을 하려면 어느 정도 과학적 스키마(schema)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불안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고전 한 권을 둘러싼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그 책이 세상에 등장할 때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 책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좌충우돌 덧붙은 다양한 해석도 중요합니다. 결정적으로, 그 책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 물어야죠. 이런 일이 제대로 이뤄질 때, 비로소 그 책은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린 명실상부한 고전이 될 수 있습니다. -p.6~7

『강양구의 강한 과학』은 과학 전문기자 강양구가 23권의 과학 고전을 선별해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세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책이 갖는 맥락, 그 책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며 ‘어디서부터 과학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의 ‘어디서부터’를 시원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읽다 보면 읽어야 할 과학 고전 리스트가 저절로 머릿속에 정리되고, 관심 없던 분야까지 흥미가 동해(그렇다. 이 책은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다. 재미없는 장이 단 하나도 없다.) 최소한 몇 권은 당장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 고전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읽어나가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던 사람들이라면 스무 살로 되돌아가는 대신 이 책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 칼 세이건이 말한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와 같은 그런 기분”으로 가득한 경이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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