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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학부모가 ‘생산직’이라서 걱정이라는 학교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1년 06월호
 

첫째가 올해 중학생이 됐다. 제주시 ○○‘읍’의 작은 학교다. 입학 첫날에 받았다는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펼쳐보는데 ‘학부모 실태’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부연 설명은 이랬다. ‘도농 혼합지역으로 학부모들은 대부분 생산직에 종사를 하고 있음’, ‘저소득층 및 결손가정이 많은 편’, ‘자녀의 인성 및 교육에 대한 관심도는 높은 편이나 가정학습 지도가 어려움’ 등등. 눈을 의심했다. 이걸 학생들에게 직접 나눠줬다고?
대부분이 생산직이라면서, 그 ‘대부분’을 배려하지 않는 투박함이 무서웠다. 사실을 적시한 것에 불과한데 괜히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언급된 정보들은 본래의 뜻만이 건조하게 파편적으로 떠도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다뤄졌던 익숙한 연관 이미지에 따라 ‘교묘하게 엉켜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도시가 아니기에 생산직 노동자가 많고, 그래서 가난하고 전통적인 형태가 아닌 가족이 많아서 ‘문제’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말이다. 농촌을 흉보진 않았지만 세련된 도시와 비교하게끔 하고, 생산직을 비하하진 않았지만 사무직이 아니라 우려스럽다고 여기게 한다. 요약하자면 ‘동네 수준이 낮아서, 공부는 포기해야 함’ 정도 아니겠는가.
학교 아무개의 문제일까? 마을 곳곳에서 누구나 대수롭지 않게 ‘들었거나 했을’ 분석이었을 게다. 아이가 입학을 앞두고 동네 미장원에 함께 갔을 때의 일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중으로 입학한다고 하자, 당사자가 코앞에 있는데도 미용사는 “거기 애들 공부 못하는데”라고 하고, 다른 손님 아무개는 “중학교는 시내로 보내야지”라면서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닌가.
이런 분위기를 접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제주의 자연 어쩌고 찬양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면 다시 육지의 거대도시로 돌아가는,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럴 계획으로 머무르는 이가 꽤 많다. 개인의 자유라지만, 이들 중에는 ‘여기서 제대로 공부시킬 생각을 하는 게 잘못이지’라는 나쁜 말을 조언이랍시고 뱉는 경우가 많았다. 야속하게도 이런 무례한 설들은 더 쉽게 뭉쳐지고 더 빨리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견고한 담론이 된다.
교사들이라고 특별히 달랐겠는가? 마찬가지로 여론에 동조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했을 거다. 세상은 끊임없이 학교 성적을 갖고 우열을 나누는 것에만 익숙하니, ‘여기 학생들 왜 그래?’라면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았던 편견 가득한 푸념들이 고스란히 ‘학교생활 안내서’ 안에 활자로 찍혀 학생들 손에 쥐어져도 누구 하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을 거다.
학생들을 미리 답답하게 바라보는 덤덤함, 이건 어떤 차별로 이어질까? 교육사회학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배경을 어떻게 신경 쓰는지에 대한 논의가 많다. “너희 아빠가 공장에서 일해? 그럼 공부도 못하겠군!”이라고 떠들 간 큰 교육자는 없을 거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주입된 사전 정보는 기대치를 낮춘다. ‘이걸 과연 알까?’라는 근심은 ‘이 정도면 이 아이들에겐 충분해’라는 수위조절의 이유가 된다. 물론 학구열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다면 교사는 ‘여긴 수준이 높으니 나도 정신 차려야지’라면서 정반대로 접근할 거다.
실수에 대해서도 차등적일 수밖에 없다. 십 대들의 그저 평범하고 사소한 일탈이 등장하면, 한쪽은 ‘여긴 좀 거친 아이가 많다’면서 분석하지만 한쪽은 ‘단순 실수’라면서 관대하게 넘어간다. 대놓고 차별하진 않았지만, 그 끝엔 선명한 구별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 분류가 야기한 ‘격차’가 정당한 차이처럼 해석되는 순간 모든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결과라면서 납작하게 분석될 것이다. 그때, 차별은 존재해도 차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괴기한 사회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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