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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문장들
“읽고 나면 힘이 나는 책이 있나요?”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06월호


최근에 어떤 지역서점에서 주관한 북토크 행사에 갔다가 한 독자로부터 유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하나뿐인 조카가 어느 날 대뜸 “고모(한테)는 (읽고 나면) 힘이 나는 책이 뭐야?”라고 묻는 바람에 조금 당황했고, 다행히 바로 떠오르는 책이 있어 대답했더니 사다 달라고 부탁해서 오늘 서점에 와서 샀다는 이야기. “근데 이 책, 열 살이 읽기에 괜찮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묻던 그는, 이어서 그런 책이 나에게 무엇인지 물었다. 나도 다행히 바로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읽을 때마다 청량하고 단단한 힘이 솟구쳐서 앞으로도 두고두고 펼쳐들 게 분명한 책. 무엇보다 그의 조카, 책으로 북돋워지는 힘의 감각을 이미 알고 있고(그 아이가 그 감각을 느낀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어떤 책이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타인의 마음속 서재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으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기 시작한(그 호기심이 확장시켜 나갈 세계를 상상해 보는 것도 짜릿했다.) 조카와 함께 읽기에 더없이 좋을 책. 그렇게 그에게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소개했다.
이 책은, 아주 어려서부터 책 읽는 기쁨을 깨닫고 생의 매 순간을 책과 함께 건너왔으며 내가 평소 가장 신뢰하는 책 리뷰어 중 한 사람인 작가 정한샘과, 그의 열세 살 딸이자 홈스쿨링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으며 계속 배우고 계속 쓰는 시간을 행복하게 통과 중인 작가 조요엘이 각자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돼 있다. 본격적인 편지가 펼쳐지기 전, ‘책에 관한 엄마의 작은 기록’이라는 제목이 붙은 1부를 읽을 때부터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뜨거운 감정들을 ‘힘’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글자를 알기 전 그림만 보고 그 내용을 마음껏 상상하며 책에 서서히 스며들던 아이들이 글자를 읽고 책 읽는 희열을 맛보고 직접 고른 책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책과 삶을 자유로이 수영하듯 오고 가기까지의 눈부신 여정은, 내 마음속 책을 향한 애정의 심지에 새로운 불을 붙였다. 책과 다시 단단한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을 가능하게 한, 세상이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질문 앞에 아이들과 마주 앉아 그들만의 답을 찾아가는 정한샘의 용기가 오랫동안 마음을 뒤흔들었다. 흔들릴 때마다 그동안 ‘정답’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 깊은 곳에 꾹 눌러놨던 사소하지만 사소해서 중요한 어떤 꿈들이 자꾸 떠올랐고, 자꾸 마주하다 보니 나도 한번 그쪽으로 한 발 떼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발끝을 움직이는” 용기를 내보는 중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함께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책 읽기를 교육의 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으며, 어떠한 지점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책이 그렇듯 아이에게도 책이 어떤 순간에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로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p.19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예리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함께 찾아가며 조금씩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두 사람의 편지를 읽으면서, 어쩌면 책 읽는 삶이란 목적지를 정해두고 나아가지 않아도 멈추는 곳곳이 목적지가 되는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조요엘이 쓴 에필로그를 읽다가 문득 갖게 된 작은 꿈 하나가 나의 다음 책들을 결정했고 그 책들이 나를 어딘가로 계속 데려가는 중이듯이 말이다. 그래서 계속 읽어나갈 책이 있는 한, 우리는 대체로 괜찮고, 다 괜찮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힘이 막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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