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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다시 한번 제대로 작별할 수 있는 기회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1년 06월호


6월에 시작하는 장마 때문에 더 ‘집콕’을 해야 할 때, 매우 시기적절한 영화가 있다. 바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2004년 만들어진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소지섭과 손예진을 주인공으로 한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원작은 우연히 TV에서 봤고, VOD로 한 번 더 봤다. 한국 리메이크는 친구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온 딸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펑펑 울게 만든 영화”라며 가족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역시 VOD로 봤다. 일본의 원작이 소박한 인물들을 내세워 감정을 섬세하고 묵직하게 전달했다면, 한국 쪽은 더 예쁘고 밝고 동적이었다. 상실한 대상과 간절히 재회하기 원하는, 만나서는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애절한 마음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아이는 물론 아내도 나도 울고 있었다.
줄거리를 이루는 두 기둥은 두 청춘의 사랑이 이뤄지는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지 1년 후 장마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재회한다는 이야기다. 소도시의 고등학교 동창인 남녀는 서로 좋아하면서도 거절이 두려워 멀리서 바라보며 애만 태운다. 여자가 용기를 낸 덕분에 사랑을 확인한 둘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고 아기자기하게 산다. 그러다 아내가 “1년 지나면, 비의 계절에 또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혼자 아들을 돌보는데, 다음 해 장마에 죽었던 아내가 나타난다. 죽기 전의 기억을 모두 잊은 상태로.
아내와 남편, 아이와 엄마의 사랑의 빈자리를 한 달 정도의 장마기간 동안 다시 채우는 과정들의 기쁨과, 다시 떠나보내야 함을 아는 절박함과 슬픔 때문에 보는 이들은 미소를 짓다 가슴 조이기를 되풀이한다. 이렇게 감정의 시소를 타다 보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영원한 이별이지만, 영화니까 가능한 ‘다시 한번 제대로 작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이제는 상실에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의미가 가슴 속에 깊고 따뜻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마철이 되면 얼떨결에 잃었던 혹은 내 탓에 잃었던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1990년대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TV 광고가 있었다. 그 광고를 볼 때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외쳤다. 마치 소망이 이뤄지기라도 할 듯. 이 영화를 본 후에는 한동안 비가 내릴 때마다 그들을 만나게 될 것 같아 뒤를 돌아보고, 함께 했던 장소를 찾곤 했다. 다 부질없는 짓임을 알지만 아직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기에, 그 사람들이 아직도 그 시절의 젊은 모습들로 내 가슴 속에 살고 있기에…. 물론 이제는 머릿속에서 그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눈 덕에 후회와 아픔만이 아니라 감사와 아름다움도 더해져 남아 있지만. 얘들아, 잘 있지?
과학적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비가 내리면 대부분의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기쁨보단 슬픔의 순간이 더 많고,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뇌에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비는 슬픔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자신을 조금씩 더 받아들이게 된 요즘, 비는 내게 포근하고 편안한 감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빗소리는 날이 서 있던 감각들과 그 속에 숨어 있던 까칠한 감정들을 달래준다. 의학적으로 빗소리는 불안을 감소시키고 마음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 불면증에도 도움이 된다.
팬데믹에 장마로 마음이 더 불편하고 외로워진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다시 한번 보거나 읽기를 권한다. 아니면 용기를 내어 아직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의 과거와 머릿속의 진실한 대화를 나누며 상실과 화해하기를…. 마음이 편해지면 세상에 덜 흔들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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