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내리쬐는 볕이 점점 뜨거워진다. 본격적 여름에 앞서 원기충전이 필요한 때다. 몸에 좋은 약초와 고즈넉한 한옥, 정겨운 돌담길이 있는 산청으로 떠난다.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 자락에 산청군이 있다. 산이 깊은 만큼 골도 깊어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청정고을임을 자랑한다. 산청은 생각보다 가깝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3시간 남짓 걸린다. 지리산 권역인 산청은 국내 자생약초 중 효능이 좋은 1천여 종의 약초가 들풀처럼 많다. 한방의 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산청의 들머리 격인 나들목은 ‘마르지 아니한 싱싱한 풀’이란 뜻의 생초(生草) 나들목이다. 예사롭지 않은 나들목을 지나 6km쯤 들판과 산을 따라 달리면 산마루 넓은 부지에 산청 한방테마파크가 나온다. 왕산과 필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이곳에서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렸다.
산청 한방테마파크는 108만8천㎡ 규모로 우리나라 최대의 한방 관련 휴양·체험 시설이 들어선 곳이다. 한의학박물관, 주제관, 한방테마공원, 기체험장, 동의본가 힐링타운, 한방자연휴양림, 산약초 체험단지 등이 있다. 챙겨볼 만한 곳은 한의학박물관이다. 소설과 TV 드라마에 소개된 허준의 모습을 여러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허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을 집필해 한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한의학의 선구자다. 드라마에서는 허준에게 의술을 가르쳐준 스승으로 류의태가 나오는데 그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물론 죽음을 앞두고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해부할 것을 유언하는 장면도 극적 재미를 위한 것일 뿐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박물관 내에는 한약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입체적인 전시물들이 있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체질 판별에 따른 한의학적 처방은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야외에는 인체와 한의학적 이야기를 테마로 한 한방테마공원이 조성돼 있어 볼거리가 많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얼마나 좋은 곳이면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됐을까? 남사예담촌은 전통 가옥이 사라지는 요즘, 한옥의 운치와 정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옛 담장을 걷다 보면 선조들의 삶이 돌부리에 채이듯 널려 있다. 2003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 이름을 ‘남사예담촌’으로 바꿨다. ‘예담촌’이란 ‘옛 담 마을’이란 뜻으로 옛날 담장이 특별한 볼거리다. 한옥과 함께 어우러진 토담과 돌담의 정취는 도시인들에게 고향 같은 푸근함으로 다가온다. 약 3.2km 정도 되는 돌담길은 미로처럼 끊어질 듯 이어진다. 담 너머에는 700여 년 전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감나무와 300살이 넘은 회화나무 등 그 나이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지는 고목들이 버티고 섰다.
남사예담촌에 있는 니구산은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의 산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곳이 유학의 고장임을 대변해 준다. 고려시대에는 왕비를 배출할 만큼 출중한 인물이 많았다. 조선 세종 때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도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을 휘감는 개울을 지나면 7가지 테마에 따라 ‘예담길’이 시작된다. 개구쟁이처럼 철없이 놀던 때부터 배움을 시작하는 때, 자립하는 때, 뜻을 알고 인생을 아는 때 등 1.6km 구간에 테마를 곁들인 걷기 좋은 길이 조성돼 있다. 길이 시작되는 곳 언덕 위에는 ‘니사재’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권율 장군이 있는 합천으로 가던 길에 하룻밤 유숙한 곳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이순신 백의종군로 제1코스 ‘고난의 길’이 시작된다.
돌담길 따라 옛 고가를 찾아 나서다
좁다란 골목으로 들면 300살이 넘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人’(사람 인)처럼 서로 맞대고 서 있다. 오른쪽 나무는 왼쪽 나무에 의지하듯 유난히 많이 기울었다.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씨고가의 정갈한 사랑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장의 손길이 느껴진다. 동그란 눈을 가진 땅꼬마 같은 강아지가 유난스럽게 짖어대지만 겁낼 필요 없다. 안채는 여느 한옥에 비해 화려하게 지어졌다. 그러면서도 한옥의 멋을 잃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지녔다.
최씨고가를 찾아가는 길 역시 돌담이 벗한다. 울창한 담쟁이가 무채색의 돌담을 화려한 여름으로 인도한다. 푸른 담쟁이만 봐도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최씨고가는 1920년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부농(富農)이었던 주인이 화려한 모양을 강조해 지었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를 엄격히 구분했는데 전통적인 유교 사상이 건축에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사양정사는 구한말의 유학자 정제용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남사로 이전한 선친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정사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 유학자의 자손답게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란 뜻에서 ‘사양정사’라 했다. 사양정사 솟을대문 앞에는 하씨고가의 허물어져가는 담장이 있다. 그 너머에 700살도 더 된 늙은 감나무가 있다. 700년이라는 말에 엄청나게 큰 나무를 상상했지만 의외로 나무는 왜소하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도 생명력이 왕성해 가을에 탐스러운 감이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 알려졌다. 사양정사 솟을대문은 유난히 높고 크다. 대문채에 딸린 광이 4칸에 이른다. 당시 주인의 경제력을 보는 듯하다.
산청에서 만나는 특별한 곳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겨울을 났으니 오죽했을까. 삼베는 여름철 무더위를 잊기 위한 시원한 옷감의 대명사가 아닌가. 그런데 모기장처럼 구멍이 숭숭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옷을 한겨울에 입고 살았으니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추위에 떨고 있던 백성들에게 따뜻한 옷을 지어 입도록 만든 이가 바로 문익점이다. 그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목화씨를 가져다가 심은 곳이 바로 고향 산청이다.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온 이야기는 초등학생도 아는 일화다. 한 알의 씨가 만민을 추위로부터 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에 가면 이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산청에는 특이하게도 피라미드 모양의 왕릉이 있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규모가 작을 뿐 분명히 돌로 층층이 쌓아 올린 피라미드 모양의 무덤을 볼 수 있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졌는데 모두 7단으로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