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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작은 승리자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1년 07월호
 

이 세상은 내 마음과 다르고, 인생에는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조금 숨 쉴 만하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시련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일상은 매사에 평가를 받고 다음 평가에 대비하는 불안한 ‘오디션에서 살아남기’의 반복이다. TV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사는 사람들만 보여주고, 우리 보통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며 더 초라해져 간다.
이럴 때 다시 한번 일어서게 만드는 힘과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저예산 영화지만 숨어 있는 진주 같은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그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한 가족에 대한 영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역대급 엉망진창인 콩가루 집안이다. 요양원에서도 마약을 하다 쫓겨난 쾌락주의자 할아버지, 사회적 성공을 위한 ‘9단계 자기 실천 이론’을 강의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파산 직전인 성공지상주의자 아빠, 일방적인 남편에 질린 골초 엄마, 동성의 애인을 잃고 자살을 시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막 퇴원한 외삼촌, 가족들이 미워서 묵언의 시위를 하는 오빠, 그리고 통통하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쓰면서도 무작정 어린이 미인대회 ‘리틀 미스 선샤인’에 나가겠다는 천진난만한 영혼의 주인공 딸 올리브가 그 화목할 수 없는 가족의 구성원이다.
영화는 딸의 미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1박 2일의 가족여행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춤을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에 가야 하고, 외삼촌은 혼자 두면 자살할까봐 데리고 가야 하고, 엄마 아빠가 없으면 밥해 줄 사람이 없어서 오빠도 따라 나선 이상한 가족여행이다. 여행을 하며 가족들은 그렇지 않아도 상처뿐인 마음에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아빠는 파산이 확정되고, 엄마는 이혼을 결심하고, 외삼촌은 새로운 애인과 즐거워하는 전 애인을 보고 절망하고,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던 오빠는 자신이 색맹임을 알게 되며 역시 절망한다. 가족들은 서로 싸우고 자동차는 망가지는데,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즐겁게 마약을 과다 흡입하다 돌아가신다. “진짜 패배자는 지는 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이란다”라는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비록 자신들의 삶은 실패했지만, 딸만은 간절히 원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게 된다. 여기서 삶의 회의감을 공유하던 외삼촌이 오빠에게 명대사를 건넨다. “인생의 고통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거야. 행복했을 때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 실패와 고통이 있어서, 그것을 인내하고 최소한 수긍하며 우리는 삶을 배우고 성장한다. 행복의 순간은 매우 짧은 쾌감일 뿐이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또 실패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리브는 미인대회에 나간다. 누가 봐도 영악하고 날씬한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탈락이 빤히 보이자 가족들은 올리브를 보호하려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말린다. 하지만 딸은 용감하게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해괴망측한 ‘더티 댄스’를 춘다. 깜짝 놀란 대회 관계자들과 참가자 가족들은 올리브를 강제로 무대에서 끌어내리려 한다. 그때 역시 깜짝 놀랐던 올리브의 가족들이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응원을 시작한다. 급기야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올리브와 함께 막춤을 춘다. 1등 외엔 모두가 패자가 되는 대회, 경쟁사회의 축소판에서 평범하다는 이유로 ‘첫 상처’를 받을 올리브를 보호하려고 콩가루였던 가족이 똘똘 뭉친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빌어먹을 미인대회들의 연속이지만, 누구도 그 반복을 피할 수 없다. 평범한, 아니 좀 모자란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래도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작은 승리’가 될 수 있다. 또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통을 받지만, 포기하지 않고 과거에서 배우고 다시 또 부딪혀 보는 게 인생이니까. 진짜 패배자는 지는 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한 단계씩 통과하다 보면, 그러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꽤 잘 살아온 ‘작은 승리자’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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