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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이프 #키워드다양한 재능을 사고팝니다!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1년 08월호


A씨는 얼마 전 이사를 앞두고 짐을 꾸리는 데 지인들의 도움을 받을까 하다가 재능거래 플랫폼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가 글을 남긴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사, 청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답글을 남겼다. 근무 조건, 견적과 함께 말이다. A씨는 그 중 가장 합리적 조건을 제안한 사람을 이사 도우미로 택해 손쉽게 이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B씨는 팬데믹으로 일주일에 3일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가 찾은 답은 ‘재능거래’였다. 영어와 독일어를 구사하는 그는 회사 업무가 끝나면 재능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간단한 통번역서비스를 제공하며 부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일대일 온라인 외국어수업도 하고 있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어느덧 강남의 오피스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든든한 부업이 됐다. 비정기적인 일거리, 수입으로 취업을 고민하곤 했던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C씨는 재능거래 플랫폼을 만난 후 직업 인생의 절정기를 누리고 있다. 플랫폼상에서 가격이 저렴하고 마감을 잘 지키는 디자이너로 평가된 덕분에 하루에도 여러 개의 일거리가 쏟아진다. 사용자들의 요구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고유의 웹디자인 외에 명함 디자인부터 광고 배너 디자인까지 작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직업을 구하고 알바를 찾는 시대를 넘어, 이른바 ‘재능’을 ‘거래’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20년대의 긱 워커, 오늘날의 다재다능 ‘N잡러’로 진화하다 
코로나19가 급작스럽게 가져온 비대면 문화와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다양한 재능과 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놓았다. 재능을 직접적인 용역과 서비스로 펼쳐보이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온라인 원데이클래스, 온라인 강의 등을 통해 틈새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동향은 ‘레트로 넘어 뉴트로’를 외치며 중고거래에 눈뜬 MZ세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온라인 재능거래’ 형태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모습, 한 가지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MZ세대의 ‘멀티페르소나’ 성향은 재능거래에 불을 붙였다.
무형의 재능이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오늘날의 현상을 설명하려면 오래전 일용직 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재능거래의 뿌리는 1920년대의 ‘긱 워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는 재즈의 인기가 치솟으며 재즈밴드 공연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우후죽순 생긴 공연장 부근에서 즉흥적으로 임시 연주자를 섭외하는 경우가 늘었고, 이런 일용직 연주자를 ‘임시 직장’이라는 뜻의 ‘긱(gig)’이라 불렀다.
일용직 인력 중개소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긱 이코노미가 오늘날의 재능마켓으로 이어진 것이지만 온라인 ‘긱’ 거래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다. 지난해 크게 이슈가 됐던 ‘벌레 퇴치사’부터 구매자의 스타일링과 쇼핑을 도와주는 퍼스널 쇼퍼, 반려동물을 위한 아로마테라피 강의, 단돈 1천원에 힙합으로 고민을 해결해 주는 ‘1천원 힙합 힐링’까지 실로 다양한 서비스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미 긱 이코노미가 높은 수준으로 활성화된 해외에서 자리 잡은 업워크(Upwork), 구루(Guru), 피버(Fiverr) 같은 재능거래 플랫폼에 이어, 국내에서도 크몽, 숨고, 오투잡, 디노 등의 플랫폼이 재능·인력 중개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사람들의 재능과 니즈가 다양한 만큼 이들 플랫폼의 서비스 또한 세분화돼 있다. 이를 테면 크몽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전문가를 찾아주는 맞춤견적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오투잡에서는 IT 프로그램 개발자 재능 10시간, 디자이너 재능 5시간, 마케터 재능 3시간 식으로 재능을 시간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재능거래 플랫폼과 배달 플랫폼, 차량 공유, 숙박 공유 등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긱 이코노미에 최근에는 생산 활동과 취미 활동이 결합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재능판매에 뛰어드는 직장인 ‘N잡러’들이 늘고 있는 만큼 콘텐츠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수요층이 두터워지면서 플랫폼 매출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크몽은 취미, 문화, 유튜브 제작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자기계발과 레슨을 중심으로 출범한 탈잉 또한 취미 관련 카테고리들을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출범 2년 만에 판매자와 구매자 간 매칭 건수가 10배 가까이 성장한 숨고의 관계자는 “갈수록 소비자의 필요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것이 플랫폼이 성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재능거래 플랫폼이 예고하는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올해 초 알바몬과 재능거래 플랫폼 긱몬이 직장인 1,324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N잡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2.3%가 ‘이미 부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부업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68.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이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의 지식과 재능, 기술이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재능거래시장의 순항을 점쳤다.
전무후무한 팬데믹으로 제한된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보다 시간을 보다 가치 있게 쓰고 싶어 하고, 경험과 생활에 대한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일일 알바, 온라인 원데이클래스로 시작된 재능거래 플랫폼은 어느덧 단순한 재능거래를 뛰어넘어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무형자산 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재능은 구두쇠처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백만장자처럼 아낌 없이 쓰는 것’이라는 아일랜드의 극작가 브렌던 비언의 말은 격언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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