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시평
[편집인 단상] 특이점을 기다리며
서중해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 『나라경제』 편집인 2021년 08월호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등장한 인공지능(AI)을 대할 때면 나는 아일랜드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린다. 20세기 연극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만 명백한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내가 10여 년 전 봤던 임영웅 극단의 국립극장 공연무대는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텅 빈 공간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의 지리멸렬한 몸짓을 반복해 보여준다. 그 몸짓과 무의미한 대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AI라는 용어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 회의에서 수학자 존 매카시의 제안을 동료들이 받아들이면서 탄생했다. 당시 회의에서 연구자들은 ‘조만간’ 기계가 인간의 지능 행위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인 허버트 사이먼(후에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20년 안에 기계가 인간이 하는 어떤 일이든 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연구의 선구자인 마빈 민스키 역시 한 세대 안에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 ‘조만간’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구글의 기술 고문인 레이 커즈와일은 그 시점(특이점이라 한다)을 2045년으로 특정하기도 했지만, 나는 단연코 회의적이다. 
AI는 인간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이는 외계인의 지구 침범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공상과학 소설은 대개 인간을 복제한 로봇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플롯으로 설정된다. 여기에서 근본 과제는 인간을 어떻게 복제할 것인가인데, 인간에 대한 정의가 계산 가능하게 쪼개져 서술되지 않으면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는 한계는 간과되고 있다.
이 한계가 처치-튜링 명제의 핵심이다. 인간 뇌에 있는 860억 개의 뉴런을 기계에 복제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뉴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계산은 무한대로 복잡해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 문제도 근사적으로 접근할 순 있다. 알파고는 무한대의 가능성인 바둑을 근사적으로 접근한 경우다. 그러나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바둑과 같이 잘 정의된 게임, 즉 닫힌 세계 안에서 작동한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인간인 것은 어떤 하나로 특정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은 열려 있는 존재다. 열려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그 어떤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유한한 존재이면서 무한을 꿈꾼다. 기계는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AI는 모두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알고리즘이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기계란 그리고 AI란 모두 닫힌 세계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다. 인간과 AI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
프로기사를 패퇴시킨 뒤, 알파고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바둑에 뒤이어 인간이 지배하던 많은 무대에 AI가 등장해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는 환영할 일이다.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업무는 AI에 맡기고 인간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분업이 가능하다. 어느 미래에 로봇이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알고리즘을 바꿔간다면 인간과 AI 사이의 구분은 사라질 것이다. 이때가 진정한 특이점에 이른 시점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면서 우리는 무한의 세계를 끝없이 열어갈 것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