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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잠깐 다녀오겠습니다작아서 더 매력적인 섬 창원 저도
임운석 여행작가 2021년 08월호




바다가 외롭지 않은 것은 섬이 많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 위에 별처럼 떠 있는 섬은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 경남 창원은 마산, 진해와 통합되면서 명실상부한 바다 도시가 됐다. 창원의 작은 섬, 저도의 매력에 빠져보자.

저도의 매력을 알리는 일등 공신, 콰이강의 다리
경남 창원 남쪽 바다에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은 섬이 있다. 저도(猪島)라 불리는 이 작은 섬이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저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때문이다. 다리는 모두 2개다. 첫 번째 다리는 1987년 완공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포로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닮았다 해 이 다리를 ‘콰이강의 다리’라 부른다. 영화 〈인디안 썸머〉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가 보행 전용으로 사용되자, 2004년에 완공한 것이다.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한 아치 곡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창원시는 콰이강의 다리를 보행 전용으로 변경하면서 상판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를 설치했다. 이름도 ‘저도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라 붙였다. 또 야간에는 LED 조명을 밝혀 은하수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그 결과 개장 후 약 1년 만에 100만 명이 찾는 창원 제일의 명소가 됐으며, 2017년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걷기 여행길 10선, 국내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도가 위치한 곳은 남해로 돌출한 구산반도의 서쪽 해상, 행정구역상 창원시에 속하지만 옛 마산 시내에서도 차량으로 30분 이상을 달려야 닿는 외딴곳이다. 저도의 북동
쪽 해안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남서쪽 해안은 작은 배도 댈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 이 가파른 절벽을 따라 저도 비치로드가 놓였다. 깎아지르는 듯한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바다를 마주하는 해안 산책로인 셈이다. 그러니 저도 비치로드를 걸어본 사람마다 ‘엄지척!’은 당연하지 않을까.



콰이강의 다리 건너면 섬이 잇댄다, 저도 비치로드
걸어서 저도에 들어가려면 관문 격인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이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믿어서 손해 볼 것 없으니 연인들은 두 손 꼭 잡고 걸어간다. 사랑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하트모양의 조형물과 포토존이 다리 초입에 설치돼 있다.
다리를 건너려면 먼저 신발을 닦아야 한다.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강화유리로 제작된 바닥은 길이가 80m에 이르고 바다와의 거리는 13.5m다. 짧지 않은 거리인 탓에 사람들은 ‘오금이 저린다’, ‘현기증이 난다’, ‘아찔하다’고 할 만큼 짜릿한 전율을 만끽한다.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가 다리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기도 한다. 때마침 다리 아래로 어선 한 척이 지나간다. 배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자 마치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흔치 않은 특별한 볼거리에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야간에는 LED 경관 조명이 빛을 발한다고 한다. 걸어보지 않아도 그 신비로움이 눈에 선하다. 마치 은하수를 건너는 듯한 착각에 빠지리라.
다리를 건너 섬에 발을 디디자 섬마을 특유의 정취가 느껴진다. 저도는 2.2㎢ 면적에 주민 90여 명이 사는 작디작은 섬이다. 해안선 길이도 10km에 불과하다. 저도를 방문하는 이유 중 십중팔구는 해안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저도 비치로드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저도 비치로드는 저도 해안선과 등산로를 잇는 6.5km의 둘레길이다. 코스는 가장 짧은 1코스(3.7km, 1시간 30분), 해안 데크로드 전 구간을 걷는 2코스(4.7km, 2시간), 바다와 산길을 잇는 3코스(6.5km, 3시간)로 나뉜다.
저도에 발을 들이자 구산반도와 저도를 포근하게 감싼 바다에 시선이 꽂힌다. 바다는 잔물결도 없이 고요하고 잔잔하다. 마치 호수처럼. 아스라한 수평선에 거제도의 산봉우리들이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처럼 걸려 있다. 고요하고 여유로운 풍경에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길에서 만난 작은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나른한 한때를 보낸다. 한없는 여유가 적요하게 느껴진다.

 

갯내음 물씬한 바닷길과 숲길을 따라
하포마을은 저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하지만 한적하기는 매한가지. 하포마을을 지나면 해변과 맞닿은 곳에 산으로 드는 길이 이어진다. 길은 숲길과 해안길로 나뉜다. 썰물 때라면 해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뜨거운 태양이 부담스러워 숲길로 향한다. 길은 ‘네가 걷는 길이 섬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는 듯 청량한 숲에 갯내음이 물씬하다. 발걸음은 구산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제1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거제도가 지척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답게 갈매기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듯 드넓게 펼쳐져 있다, 시선을 남서쪽으로 향하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이 아득하다. 섬은 섬을 알아보는 것일까, 바다에서 조망하는 섬은 각별한 친구처럼 정겹다.
제1전망대를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나무 사이로 바다와 섬이 숨바꼭질한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바다를 조망한다. 바다에 부유하듯 떠 있는 섬들이 가슴까지 밀려왔다 밀려간다. 섬들의 소리 없는 이동에 가슴이 벅차다. ‘통통통’ 낚싯배 엔진소리가 적막을 깬다. 낚싯배에 걸터앉은 사람들. 그들은 고기를 낚는 것일까, 세월을 낚는 것일까. 낚시에 입질이 있는지 낚시꾼의 손놀림이 바쁘다.
배 주변에 양식장을 알리는 부표들이 떠 있다. 한차례 일렁이는 너울에 부표가 흔들린다. 부표가 햇빛에 반짝인다. 양식장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곱다. 모진 풍파에 이리저리 깎인 갯바위들도 멋있다. 지난한 세월 부단히 잘도 버텼다. 소박한 풍경을 바라보는 맛이 즐겁다. 제2전망대를 지나면 해변으로 길게 데크가 놓여 있다. 이 길을 ‘바다 구경길’이라 부른다. 길은 이름값을 한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섬들을 구경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한동안 바다와 떨어진 숲길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제3바다 구경길’ 이정표가 서 있는 길로 잇댄다. 해변에는 다소 거친 자갈이 나뒹군다. 그 모습이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섬에서 만나는 일상의 공간이다. 꾸미지 않은 모습, 아니 꾸밀 것도 없는 소박한 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힐링이 된다. 아름다움도 지나치면 피곤하기 마련이니까.
남은 구간은 저도 최고봉인 용두산에 오르는 일이다.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능선을 타기도 하고, 비탈진 길도 걷는다. 바다를 벗 삼아 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숨이 차오른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해안에서 보는 바다보다 정상에서 보는 바다가 더 가슴 벅차다는 사실이다. 이 맛에 섬을 찾고 이 맛에 섬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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