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팬데믹에 비대면 활동과 고립이 일상화되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인류가 출현하고 있다. 소외되는 게 두려워 온라인으로 열심히 소통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족과 디지털 디톡스를 선언하며 관계의 속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족이다.
30대 주부인 A씨는 틈만 나면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SNS를 확인한다. 잠시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는 그녀는 재테크 정보를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다. 팬데믹 이후 그녀가 가입한 동호회는 온라인 주식 동호회부터 부동산 투자 동호회까지 7개나 된다. 새로운 정보 업로드에 서비스 문자가 수시로 날아들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하나라도 놓칠까 봐 꼼꼼히 챙겨 읽는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올렸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쏟아질 때마다, 자기만 정보에서 빠진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녀는 육아 정보를 나누기 위해 가입한 SNS 모임에서조차 경제, 사회, 문화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녀의 남편인 40대 B씨는 정반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낳은 고립이 은근히 반갑다. 처음엔 선택의 여지 없는 비자발적 고립이 불편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있기는 점차 자발성을 띠었다.
그는 아내가 심취한 투자 정보엔 흥미가 없다. 그의 관심은 정보와 관계에서 자유로운 삶이다. 요즘 B씨는 등산, 낚시, 캠핑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야외 활동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평일엔 혼자 놀 수 있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탈락의 공포에 떠는 사람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는 사람들의 성향을 갈라놨다. 예전보다 대면 접촉이 줄어든 가운데,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라도 ‘인싸’이길 갈망하는 포모족과 스스로 ‘아싸’로 살길 원하는 조모족으로 나뉘었다고 분석한다.
포모족,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최신 흐름을 놓치고 트렌드에 뒤처질까 봐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이런 현상을 처음 알아챈 사람은 마케팅 전문가 댄 허먼이다. 그는 소비자들이 기회나 기쁨을 잃을지 몰라 두려워한다는 걸 인식했다. 소비자심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포모’라는 용어는 작가 패트릭 맥기니스가 2004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매거진에 사회이론과 관련한 글을 기고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본래 ‘한정 판매’처럼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들어 구매를 자극하는 의미의 마케팅 용어였으나, 점차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게 됐다. 미국에서는 성인 가운데 절반가량이 포모 증세로 고통을 겪는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주식·가상화폐 가격과 부동산 시세가 폭등했다. 포모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은 무작정 투자에 뛰어들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다. 가만히 있다간 낙오될 거란 불안심리의 단면이었다.
SNS는 포모 증후군을 강화하는 수단이 됐다. 앱을 열면 줄줄이 나오는 화려한 광경은 소외감을 일으키지만, 유용한 정보를 놓칠세라 무턱대고 삭제하지 못하는 꼴이다. 새로운 습득으로 불안을 잠재워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정보는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잠자기 전에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운전 중에도 SNS를 챙겨 보고 문자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면, 한번쯤 포모 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이런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덜 효율적으로 살기’를 권한다. 김소원 심리상담사는 “적절한 선에서 가면을 쓰고 나를 보여주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사회적 고립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며 “타인과의 비교를 지양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나와의 거리 좁히기 시간으로 만들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발적 고립을 택해 아날로그와 자연을 누리다
조모족은 관계 집착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넘치는 관계와 정보에 피로감을 느낀 그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혼자 놀기의 즐거움을 깨닫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SNS나 오프라인 모임을 멀리한 채 자기계발과 힐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운동, 명상, 자기만의 식이요법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조모족은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싸’를 낙인이 아닌, 일종의 인증처럼 여긴다. 작가 임홍택이 『90년생이 온다』에 썼듯, ‘나는 나!’라는 다부진 각오와 철학으로 주류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여유롭게 맞서는 사람들이다.
조모족이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부류로 떠오르면서, 여행 업계나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디지털 디톡스’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세로토닌 워킹, 힐링 리조트, 힐링 요가, 숲 태교캠프 등을 내세운 아날로그 휴가지는 모든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정신적 여유를 얻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방문객이 크게 늘어 예약이 쉽지 않다.
아날로그와 자연주의로 무장한 제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 알람시계는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 대신 턴테이블과 라디오를 사용하는 조모족이 많아진 것이다. 또한 세운상가와 을지로 인쇄골목에 가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MZ세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고립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대신, 자기를 돌아보고 ‘혼자 놀기’를 즐기는 조모족. 번아웃 증후군과 고립 공포증이 난무하는 피로사회에서 이 아싸들이 더 핫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