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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초가을 숲 내음에 취하다
임운석 여행작가 2021년 09월호


북한강 주변에 드리운 물안개가 운치를 더하는 곳, 가평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매력적인 지역이다. 가평의 진정한 매력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숲길에 있다.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가볍게 가평을 찾았다.
 

가평의 가을은 유난스럽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가평 가는 길이 수월해졌다고 한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놓여서란다. 옳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멀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가평은 강원도와 맞닿은 경기도 끝자락에 있기 때문이다. 가평군은 북쪽으로 강원도 화천, 동쪽으로는 춘천·홍천과 이웃한다. 이유는 또 있다. 가평은 대부분 산지여서 곧은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길도 평지보다 비탈길이다. 고도가 높은 북부 지역은 해발 1천m에 이른다. 힘껏 점프하면 하늘나라에 턱걸이라도 할 듯한 높이다. 지형이 이렇다 보니 사람이 힘든 것은 둘째고, 차가 더 힘들어할 판이다. 그러나 구불구불한 도로여건이나 높은 해발고도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다.
가평의 가을은 유난스럽다. 금강산 기슭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먼 길을 달려 가평에 이른 뒤, 힘든 여정을 청평호에서 잠시 내려놓고 휴식한다. 가을이 깃든 호수의 정취를 상상해 보라. 가평을 에두른 화악산·명지산·축령산·서리산·호명산에 단풍이 물들고, 그 고운 빛깔이 잔잔한 호수에 거울처럼 담길 것이다. 북한강에 피어오른 안개는 자연스럽게 여러 산으로 스며들어 온 산을 촉촉이 뒤덮는다. 이런 기후조건은 잣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1930년대 일제가 축령산 기슭에 조성한 잣나무 숲은 오늘날 잣나무만 5만여 그루가 있는 큰 숲이 됐다.
이맘때 가평을 여행한다면 꼭 한번 들러볼 곳이 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여행 코스 중 가장 먼저 찾아보길 권한다. 호젓한 정취를 독차지하는 경기도잣향기푸른숲이다.
가평군은 전체 산림 면적 중 잣나무가 30% 정도를 차지한다. 국내 잣 생산량의 60%를 책임질 정도로 잣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장이다. 잣향기푸른숲은 잣나무가 많은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 해발 450~600m에 있다. 이곳에 잣나무가 자란 지 80년이 넘었다.
잣향기푸른숲은 숲 체험과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휴양 공간이다. 산림 치유란 피톤치드, 경관, 소리, 향기 등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활용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회복하는 활동이다. ‘휴식’보다 ‘치유’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산림 휴양과 차이가 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림욕보다 한 단계 발전된 개념이다.
체험 코스는 유치원생부터 성인, 가족, 연인까지 온 세대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나뉘어 있다. 가장 짧은 유치원생 코스는 1.13km로 약 30분이 소요되고, 인기가 좋은 가족·연인 코스는 3.57km에 약 1시간 40분 걸린다.
숲길 산책은 축령백림관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는 잣나무의 특성과 잣 생산과정, 잣 요리 등 잣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전시한다. 전시관을 나와 냇가를 따라 비탈길을 오르면 데크가 이어진다. 데크가 놓인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충분할 만큼 넓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숲길의 표정은 매우 다양하다. 굽고 휘고, 오르고 내려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고요한 자연을 닮아가는 것 같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감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어느 길을 걷든지 미끈하게 자란 잣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도 걷는 내내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산림이 주는 치유의 선물이다.
화전민 마을에는 너와집과 귀틀집, 숯가마 등이 재현돼 있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 화전민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내부까지 관리가 잘 돼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봐도 된다. 숲길에는 나무 벤치와 평상이 여럿 놓여 있다.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깊게 호흡해 본다. 들숨과 날숨, 호흡에 집중할수록 잡념은 사라지고 심신이 안정된다. 느릿느릿 여유를 만끽하다 숲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른다. 물을 가둬 놓은 사방댐이다. 댐을 따라 데크가 놓여 있다.
마지막 코스는 힐링센터다. 체성분, 스트레스, 혈압, 맥박 같은 기초건강 요소를 체크하고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놀랍게도 숲길을 걷고 나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면 평소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 산림 치유는 2시간 안팎이 적당하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시간만큼은 숲에 머물길 바란다.

 

백두산 천지를 닮은 호명호수
가평군의 아름다운 여덟 곳을 ‘가평 8경’이라 한다. 그 가운데 2경에 손꼽는 곳이 호명호수공원이다. 호명산 538m 지점에 있는 이 공원은 1979년 11월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발전을 시작한 청평 양수발전소의 상부 저수지에 조성됐다.
일반 차량은 호명호수 입구까지 진입할 수 없다. 공원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서 노선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그만큼 호젓하게 공원을 거닐 수 있다. 호수를 따라 1.6km 정도의 산책로가 있고, 울창한 숲속에는 그늘이 넉넉해 가족 나들이객에게 안성맞춤이다. 가족들은 자전거를 이용해서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가을날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단풍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호명산은 산세가 깊고 울창해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공원에 호랑이 조형물이 있는 이유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거북이 등판은 태양열 패널로 마감한 조형물이다. 여기서 생산한 태양열 에너지는 호수 주변 가로등을 밝힌다.
호수를 조망하기 좋은 호명갤러리에는 미술전문기자 출신인 최달수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갤러리 전망대에 오르면 청명한 가을 하늘이 호수에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호명호수가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무색하지 않다. 호명호수의 풍광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면 잊을 수 없는 가을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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