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휠체어를 처음 탔던 날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2021년 09월호
 
“기자님, 저희 같은 장애인들은 차라리 모두 안락사를 시켰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만큼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뇌경색을 앓고 휠체어를 타게 된 지체장애인의 말이었다. 그를 취재하러 갔다가, 생각보다 깊은 절망을 마주하고선 말문이 막혔다. 죽는 게 외려 나은 건 대체 어떤 힘듦일까, 지독히 알고 싶었다.
며칠 뒤 난 수동 휠체어에 처음 올랐다. 편히 걷던 보도블록이 그리 울퉁불퉁한지 몰랐다. 경사까지 더해지니 한겨울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횡단보도 녹색 신호는 절반쯤 건넜을 때 이미 끊겼다. 늘 눈높이에 있던 버스노선 안내판을 보기 위해 목덜미가 뻐근해질 만큼 고개를 꺾어야 했다. 들어갈 수 없는 가게가 절반이 넘었다. 바로 코앞이 마트인데, 가는 길이 에스컬레이터밖에 없어 15분을 돌아가야 했다.
영화관에 가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탔다. 고정 장치가 부실한 버스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지하철을 타다가 타는 곳과 전동차 사이 구멍에 바퀴가 빠져 꼼짝도 못 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동차 문 사이에 낄 뻔했다. 영화관엔 휠체어 좌석이 없는 곳이 많았고, 있어도 맨 뒤나 맨 앞에만 앉을 수 있었다.
결국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생리 현상 때문이었다. 1시간을 찾아다녔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용변이 나올 것 같아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5시간 만에, 이 무심히도 배려 없는 세상에.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긴장하며 다닌 탓에 아픈 몸보다, 마음이 더 아렸다. 그동안 편히 다닌 이 세상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불편한 곳이었단 생각에. 그걸 손톱만큼도 짐작하지 못했단 미안함에.
매일 새벽까지, 한 글자도 나아가기 힘든 기사를 썼다. 많이 봐줬으면 싶어서 문장을 쓰고 고치길 반복했다. 장애인 문제는 관심이 적다는 걸 알았기에. 그러나 예상외로 기사는 시사 1위에 올랐다. 독자들 반응도 좋았다. “주위에 장애인이 왜 안 보이는지 알겠어요.” 그것이 간절히 바란 거였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것,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눈길이 닿는 것.
그로부터 7년 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 세상처럼 내가 모르는 곳도,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곳도 많으니 곳곳을 누비며 체험해 보려 만든 기획이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 거기엔 많은 기자가 현장 깊숙이 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지금도 체헐리즘은 계속되고 있다. 참 많은 일을 겪었다. 123층 롯데타워 창문을 닦으며 깨끗한 유리창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알았고, 몇 초에 하나씩 우편물을 배달하며 집배원이 왜 과로사하는지 알게 됐다. 시골 개 옆에서 1m짜리 목줄에 묶여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니 풍경을 외워버릴 정도로 지루했다. 눈을 감고 시각장애인 체험을 했을 땐 늦은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눈물을 쏟았다.
그늘을 짐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사람다운 일임을 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음을 또 안다. 모르는 이와 마주했을 때 정중히 예의를 갖춘다. 그동안 깊이 깨달은 것들이다. 체헐리즘은 계속될 것이다. 여전히 알려야 할 이들이 많기에.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