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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건강한 페미니즘?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1년 09월호


20년 전,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등록금 인상을 막겠다는 총학생회의 투쟁으로 학교가 어수선했다. 회장단이 삭발까지 불사했는데, 이들이 여성이라서 더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학 운동권 약발이 떨어졌을 때라, 이슈가 무엇이든 이들을 아니꼽게 보는 이가 더 많았다. 빈정거리는 교수도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정도로 감수성이 제로였던 시대, 강의실에 울려 퍼진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화가 가능하겠냐? 쟤들은 너희처럼 화장도 안 한단 말이다! 딱 보면 알지!”
비슷한 시기, 가족의 결혼식이 서울대 내부에서 열려서 친척들이 전세버스로 이동했다. 하객 중 일부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처음 와봤다면서 연신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목적지에 다다르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갑자기 한쪽을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흡연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며 말이다. 무리 중에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게 못마땅한 한 어른이 외쳤다. “저 여자는 절대 서울대 학생이 아니야. 딱 보면 알아.”
나는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했고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 풍토를 비판하는 책도 출간했다. 방송에서는 성차별을 직시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악플에 시달릴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았는데, 나는 그것조차 사회적 맥락이 있는지를 따져보곤 했다. 이를테면 “누나 많은 막내 남동생처럼 징징거리지 마!”라는 건 일상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문화적인 조롱 아닌가. 특히, 이 말은 독특했다. “생긴 건 멀쩡하면서 왜 페미니즘에 동조해?”
언급된 발화들은 수면 위로 등장해서도 안 되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사회적으로 동의 불가’라는 딱지가 신속하게 붙여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조각들은 합쳐져 크기를 키웠고 여기저기 마음껏 굴러다니며 끊임없이 여성에게 린치를 가했다. 여성주의의 냄새만 맡아도, 페미니즘의 ‘ㅍ’만 들어도 분노의 게이지를 최고로 올려서 상대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유의미하게 증식했다. “작가님은 페미니스트인가요?”, “페미니즘에 찬성한다는 건가요?” 등의 ‘사상검증’ 질의가 강연장에서 쉽사리 등장한 건 최근 몇 년 사이다.
수면 위로 튀어나오는 걸 감추는 시늉조차 사라졌으니,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짧은 머리 스타일이 논쟁이 되는, 기가 찰 일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었을 거다. 일부에선 인터넷 어디선가의 이야기를 언론이 키운 것에 불과하다면서 의미를 축소했으나, 이슈 안에는 “어쨌든 페미니스트라면 잘못된 거 아닌가?”라는 식의 공세가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야당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선수가 과거에 이상한 발언을 해서 논쟁이 촉발된 거다”라는 논리를 전파하니, “숏컷이라고 다 페미니스트는 아니다”라는 엉뚱한 반론이 등장하고 “스스로 페미니스트 아니라고 하면 될 일”이라는 괴상한 해법 제시로 이어진다. 압력은 이미 실재한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냐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공개재판에 소환된 이들은 자신은 페미니스트도 아닐뿐더러, 특히 남성 혐오를 일삼는 페미니즘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개 선언을 해야지만 사슬에서 풀려났다.
건강한 페미니즘은 괜찮다고 한다. 건강하지 않은 건 모든 패러다임에 존재한다. 차별도 허락해 달라는 자유주의, 노동 문제를 수요와 공급 곡선의 점으로 이해하는 경제학 제일주의는 ‘건강하지 않은’ 접근이다. 하지만 이 이유로 자유와 경제학을 언급하는 이들이 ‘혹시’라는 의혹에 답을 하진 않는다. 페미니즘만, 어쩌면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광범위하게 도려내져도 무방하다. 그 출발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성이라면 사랑받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투의 이야기들,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격지심에 욱한다는 망상 수준의 궤변들이 부유했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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