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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단 몇 분 만에 나만의 맞춤형 화장품 만든다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1년 09월호




전 세계 화장품 업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소규모 브랜드의 약진이다. MZ세대는 더 이상 빅브랜드에 끌리지 않는다. SNS에 익숙한 이들은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는 개성 있는 제품을 찾아 쓴다. 눈높이가 높아진 소비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시장의 변화에 맞춰 개인 피부 맞춤형 화장품 솔루션을 만들어낸 대구의 창업가가 있다. 릴리커버의 안선희 대표다. 피부진단기기, 피부진단 앱, 맞춤형 화장품 제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맞춤형 화장품 제조기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구독서비스까지 모두 만들어낸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다. 안 대표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 필자가 『나라경제』 창업가 인터뷰를 위해 지방을 방문한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다.

피부진단부터 화장품 제조, 구독서비스까지 모두 만들어내
“에스테틱숍이나 피부과에 가지 않고도 누구나 편하게 자기 피부를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안 대표가 릴리커버를 창업한 이유다.
가자마자 직접 이용해 봤다. 릴리커버가 개발한 피부진단기기 ‘뮬리’를 얼굴에 대고 피부진단을 받았다. 뮬리는 인종, 성별, 나이에 기반한 11만 건의 피부데이터를 바탕으로 내 피부의 주름, 홍조, 모공 등을 분석해 준다. 그리고 뮬리와 연결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추가 문진에 답하자 내 피부는 ‘수분이 부족한 중복합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진단 결과를 공중전화 박스처럼 생긴 맞춤형 화장품 제조기기 ‘에니마(Enima)’에 입력했다. 에니마는 일종의 이동형 스마트팩토리다. 에니마의 로봇팔이 재빠르게 화장품 제조를 시작했고, 2분 만에 제조가 완료돼 배출구에서 제품이 나왔다. 맞춤형 화장품 ‘발란스’다. 구독서비스를 통해 집에서도 뮬리로 피부진단을 하고 그 결과를 보내 내게 맞는 맞춤형 화장품을 2주마다 받아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맞춤형 화장품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은 수십 억을 투자받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릴리커버가 유치한 민간 투자금은 고작 7억 원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대구에서 나고 자라 금오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안 대표는 2001년 LG전자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대기업에 취직한 것은 좋았지만 오래지 않아 한계를 느꼈다. “회사에 여성 연구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도 어려워 보였고요. 공부를 더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학위를 이수한 안 대표는 2005년에 대기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북대병원에서 임상지원팀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화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도 받아야 하며, 임상시험까지 거쳐야 하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안 대표에게 큰 경험이 됐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피부과 교수님들과 많이 만나고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에스테틱숍이나 피부과 병원에 가지 않고도 편하게 자기 피부를 진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창업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죠.”
안 대표는 11년 동안 경북대병원에서 임상지원팀장으로 일하면서 릴리커버 창업에 필요한 경험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 퇴사하고 드디어 창업에 도전했다. “피부 진단과 관리에는 플라즈마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무작정 포항공대나 군산의 연구소 등을 찾아가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창업과 관련된 강의가 있으면 서울까지도 찾아가서 듣고, 연사분들에게도 열심히 인사드렸습니다.”
창업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열심히 다니며 네트워크를 넓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업에 필요한 정보도 얻고, 사업 파트너, 투자자나 중요한 핵심인재를 만나기도 한다. 지방에 있으면 이런 활동을 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안 대표는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인맥을 쌓았다.

적극적인 네트워킹으로 지방 한계 극복···올해 초 47억 원 시리즈A 투자 유치
초기에는 정부 지원사업을 잘 활용했다. “우선 시제품 제작에 2천만 원을 지원해 주는 과제에 응모했습니다. 또 대구시와 경북대에서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팩토리에 1인 공간을 얻어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발표 연습을 했습니다. 덕분에 첫 시제품 모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2017년에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서 삼성벤처투자의 투자도 받았다. 대구테크노파크의 지원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기회도 가졌다. 그곳에서 연결된 멘토 덕분에 현지 다양한 인종의 피부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쌓아가면서 여기저기 알리다 보니 투자자가 먼저 찾아왔다. 킹슬리벤처스라는 회사가 투자하면서 팁스프로그램까지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릴리커버는 자동화된 맞춤형 화장품 조제장치 개발 프로젝트로 팁스에 합격했다.

작은 스타트업이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양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도 많이 들고 양산 과정에서 제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실패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뮬리와 에니마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대구에서도 중견기업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스타트업을 만나러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구의 중견 제조회사인 대성글로벌을 소개받아 미팅을 하게 됐고, 대성글로벌이 5억 원을 릴리커버에 투자하고 뮬리 제품 제조를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양산 자금과 양산 파트너를 동시에 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첫 뮬리 700대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맞춤형 화장품 제조기기인 에니마도 대성글로벌과의 협력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대구의 중견기업과 오픈이노베이션 성공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릴리커버가 겨우 7억 원으로 여기까지 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정부 지원이었다. 릴리커버의 초기 투자는 정부와 대구시가 한 셈이다. 안 대표는 “정부가 펀딩한 금액을 따져보면 대략 15억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릴리커버는 올해 초 시리즈A 투자 유치에 나섰다. 목표액이 20억 원이었는데 투자자들의 반응이 좋아 47억 원으로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했다. 릴리커버는 이 투자금으로 뮬리와 에니마 제품을 양산 및 개선하고 마케팅과 해외진출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미 중국, 일본 등에서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어 희망적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과 투자금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재, 정보, 투자금에서 소외된 지방에서는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활발한 활동으로 극복했다. 연간 KTX 탑승 횟수가 500회를 넘길 정도로 부지런히 다녔고, CES·MWC 등 해외 유명 전시회에서도 제품을 알렸다.
안 대표는 “중요한 단계마다 소개해 준 분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안 대표의 창업기는 다른 지방의 창업가들에게도 훌륭한 영감을 준다. 릴리커버가 쑥쑥 성장해 대구를 대표하는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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