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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란 세상에 없다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09월호


2021년 1월, “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자녀에 대한 보호자의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이로써 한국은 전 세계에서 62번째로 아동 체벌을 금지한 국가가 됐다. 하지만 “학대와 체벌은 엄연히 다르다”며 체벌금지에 거세게 반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학대는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적절한 체벌(일명 ‘사랑의 매’)은 가정교육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 체벌을 전면 금지한 스웨덴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이와 상황이 비슷했다. 체벌이 사라져 어린이들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면 버릇없고 교양 없고 이기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으니 ‘더 엄격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폭력에 반대합니다』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웨덴의 어린이책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며 발표한 연설문이다.
린드그렌은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을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는 순간 무언가에 가격당한 것처럼 얼얼한 아픔이 번지는 그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을 회초리로 훈육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말썽을 부린 아들에게 밖에서 네가 맞을 회초리를 구해 오라고 시킨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울면서 돌아온 아이는 돌을 내밀며 말한다. “회초리는 못 찾았어요. 그치만 엄마가 저한테 던질 수 있는 돌멩이를 구해 왔어요.”

아이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나를 아프게 하고 싶어 해. 그렇다면 돌멩이도 괜찮을 거야.’ (…) 둘은 그렇게 함께 울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가져온 돌멩이를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돌멩이는 계속 그곳에 놓여 있으면서 엄마가 그 순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영원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약속 말입니다. -p.42~43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려고 한 건 많은 이가 주장하는 ‘적절한 체벌’이었지만, 돌멩이를 주워 온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그것이 그저 ‘폭력’이었음을 깨닫는다. 연설문 전체에서 린드그렌은 아동 학대와 체벌을 결코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회초리를 드는 양육자와 채찍을 휘두르는 양육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일관되게 ‘폭력’이라고 지칭한다.
나는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유년시절 겪은 체벌의 경험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심리적 공포기제나 억압기제로 작용한다는 걸 사회에 나와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됐다. ‘잘못을 하면 체벌을 받는다’는 인과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면 마음속으로 무심코 ‘나는 맞아도 싸다’고 스스로의 가치를 매겨버리는 아이가 건강한 자아상을 만들기 쉬울까?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사람이 사람을 때릴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아이와 체벌에 노출된 아이 중 누가 더 체화하기 쉬울까? 누가 더 나의 신체주도권을 타인에게 쉽게 넘겨주지 않을까?
오은영 박사도 “‘사랑’과 ‘매’는 공존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듯이 ‘사랑의 매’, ‘적절한 체벌’은 기만적인 말이다. 세상에 적절한 폭력이란 있을 수 없다. 체벌의 강도와 맥락과 상관없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는 것과 돌팔매질 당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폭력에 반대합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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