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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그리고 미래는
평범해 보이는 작은 연못의 가치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 2021년 09월호


경북 의성은 우리나라에서 비가 적게 내리는 대표적인 소우지역이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와 달리 과거에는 물 부족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제약 요인이었다. 그래서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수자원이 풍부한 큰 강 주변에 위치한다. 그런데 의성에는 삼국시대 이전 조문국이라는 왕국이 있었다. 물이 부족했지만 과거부터 사람들이 살면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는 부족한 수자원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성에서 수천 년간 농사를 짓고 문화를 유지해 온 비밀의 답은 저수지보다는 소류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한 작은 연못들이다. 지금도 의성에 가면 크고 작은 저수지가 1천 개소 넘게 분포한다. 이 작은 연못에는 수달과 같은 보호종들이 살아간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조성한 연못이 다른 생명들에게도 서식처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런 시설들이 수천 년간 유지돼 온 것은 못도감(연못을 지키고 관리하는 직책)이라고 하는 지도자 제도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전승됐기 때문이다. 1천 개가 넘는 연못은 수천 년간 이곳에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의 노력의 결과다.
작은 연못들은 특별한 경관을 선사한다. 하지만 지역주민에게는 흔하고 평범한 시설일뿐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많은 소류지가 황폐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지하수 개발로 쉽게 물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소류지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의성에 있는 소류지와 같은 문화유산을 ‘농업유산’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농업유산을 발굴해 지원하는 ‘국가중요농업유산제도’가 있다. 2013년 청산도 구들장논이 제1호로 지정된 이후 올해 강진 병영성 연방죽이 제16호로 지정됐다. 의성 소류지는 2018년 제10호로 지정됐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은 역사성과 지속성, 생계 유지, 고유 농업기술, 전통농업문화, 특별한 경관, 생물다양성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농업유산은 인류사회와 자연환경의 오랜 공동진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경관과 생물다양성이 유지된다.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농업유산은 자연, 가족, 지역사회, 역사, 생업활동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업유산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지만 그 지역이 갖고 있는 공동체 가치와 정체성은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농업유산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이런 특징으로 농업유산 보전에는 일반 문화유산과 달리 지역의 경제적 이익과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적응, 해당 농업유산을 유지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지가 필요하다. 즉 주민이 함께 참여하면서 시대와 상황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동적보전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농업에 대한 무관심으로 많은 농업유산이 발굴도 되기 전에 사라져 가고 있다. 과거 우리 농촌에 흔히 있던 다랑논이 대표적이다. 다랑논이 사라지면서 다랑논과 관련된 농법, 농촌문화, 종자, 더불어 살아가던 메뚜기 같은 생물자원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농업유산의 소실은 결국 정신과 기억, 문화와 경관, 생물다양성을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계적으로 농업유산 보전제도를 가진 국가는 많지 않다. 다행히 우리 정부와 전라남도는 농업유산을 발굴·지원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농업유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농업을 기반으로 유지돼 온 우리나라는 다양한 농업유산이 곳곳에 존재한다. 흔하고 평범해서 잘 살펴보지 않았지만 사라지면 다시 복구하기 어려운 것이 농업유산이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 그리고 전통문화와 경관 보전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농업유산을 발굴하고 보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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