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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국의 반도체산업
유진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 2021년 10월호


최근 미국은 반도체 관련 첨단 기술과 장비의 중국 이전을 규제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기술은 미국에, 시장은 중국에 의존한 한국 입장에서 양자택일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주요 기술을 대부분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규제에 참여하게 될 경우 반도체의 종류별·사용처별로 규제를 차등 적용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과 갈등을 겪으며 미국은 반도체 문제를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리쇼어링, 국내 생산 확대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D램 생산의 70%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미국의 불안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다. 생산 기지를 한국에 유지하는 것의 효율성 및 전략적 중요성, 이전할 경우의 비용과 효율성 저하, 중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이 상존하는 대만의 지정학적 상황을 설득해야 한다.
승자 독식이 매우 강한 반도체산업은 여러 개의 종합반도체 기업(IDM)이 있던 것이 과점으로 변화했고, 향후 복점(duopoly)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빅4(인텔,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중에서 두 개만 남는다면 실로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그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TSMC에 뒤처진 미세공정 기술을 조기에 따라잡고,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반도체산업은 과학기술 선진국이 아니어도 대규모 설비투자 비용과 생산 경험이 풍부한 기술인력이 있으면 진입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이 주도권을 가진 D램도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과 같이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과 같은 나라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미중 갈등을 후발주자와의 초격차를 확대하고 파운드리와 로직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미국에서 파운드리 생산을 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파운드리에서 성공하려면 IDM 사업과 파운드리를 겸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파운드리에서 로직반도체를 비롯한 다양한 반도체에 대한 생산 노하우를 충분히 쌓는 일은 후일 로직반도체 산업 진출에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한국이 반도체 세계 2위에 오른 것은 노벨상을 몇 개 수상한 것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속적인 산업의 강자로 남으려면, D램을 넘어 꾸준히 로직반도체와 같은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고, 설계·장비·소재 기술의 인프라를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 핵심은 반도체 분야의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미래 반도체 연구에 필요한 고가 장비·시설과 충분한 규모의 고급인력을 갖춘 반도체 전문연구소가 없다. 반도체 생산은 수백 개의 공정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종합기술로,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주요 공정에 기술혁신이 동반돼야 한다. 한국과 같이 여러 곳에 연구자가 분산돼 있는 시스템은 많은 단위기술을 엮어 새로운 종합기술을 만드는 데 비효율적이다.
EU는 반도체산업 규모는 작아도 산업의 강자다. ASML, ARM 등의 세계적인 기업이 있기 때문인데, 이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IMEC, 프라운호퍼와 같은 세계적인 연구소다. 첨단반도체 생산에 필수 장비인 ASML의 식각장비는 IMEC과 공동 개발된 것이다. 반도체 전문연구소인 IMEC은 5~10년 후에 쓰일 기술의 선행 연구개발로 국제적 명성이 있어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를 위탁하고 있다. ISIT, IZM, ENAS, EMEF 등 프라운호퍼 연구회에 소속된 여러 반도체 전문연구소도 모두 반도체 주요 분야의 기술을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취급한다. 특정 분야 노하우만 있는 단위 실험실보다 시너지가 크고 종합기술의 구현에 더 효율적일 것은 자명하다. 차제에 한국에도 반도체 전문연구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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