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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말하는 대로
김연실 『어쩌다, 승무원』 저자 2021년 10월호


“팀장님, 10월까지만 비행하고 싶습니다.”
업무 중 가벼운 면담이라고 생각한 팀장님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내게 퇴사 서류를 건네며 “다들 이 서류 받고서 한 번 더 고민할 시간을 보내는데, 얼마나 필요하겠니?”라고 물었다. 나는 “더 안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별문제 없이, 오히려 너무 잘 다니고 있는 까닭에 몇몇 선배는 나를 따로 불러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 물었다. 본부장님은 비행 전 브리핑을 기다리는 나에게 다가와 “그만둔다고 말한 사람이 왜 너였는지…. 섭섭하다.”라고 말했다.
5년간 승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다섯 대에 불과하던 우리 회사 비행기는 스무 대를 넘겼다. 회사는 예전엔 대기업에 위탁해 기내면세품을 팔았지만, 이제는 자체적인 케이터링센터를 통해 물품을 관리하고 판매한다. 이렇게 회사가 성장하듯, 나도 승진하고 성장해 나갔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승무원이 하는 일의 순서는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물론 비정상적인 상황이 생기면 그에 맞는 항공 법규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지만, 이런 때 외에는 꽤 단조로운 비행이 반복된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기획하는 업무를 하고 싶었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부터, 우리 회사에서 하길 바라는 사업을 제안하고자 보고서 세 개나 쓰고 나와 버렸으니……. 일부러 썼다. 이런 업무가 내가 원하는 회사 생활의 방향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으니까.
스물아홉 살. 누군가는 아홉수 때문에 이직하기에 어려운 나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입으로 퇴사를 말했고 블로그에 비행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당시 만나는 사람이었던 남편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내가 서른세 살이 되면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될 거야.”
출간을 예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랬고, 또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비행 일기는 지난 5년 동안의 이야기로, 기존 승무원이 쓴 책이 정적인 데다 품위만을 고집했다면,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진상 고객에게 당당히 맞서는 승무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말하듯 적어 내려갔다.
그 일기를 보고 MBC 〈비밀낭독회-밝히는 작자들〉 제작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규 편성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내 일기를 방송에서 다루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방송에 나오자마자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나는 『어쩌다, 승무원』이란 책을 출간할 기회를 얻었다. 말하는 대로, 서른세 살에.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말에는 나와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참 부족하고 언제나 완성형은 아니겠지만,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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