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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쌓는 하루하루가 노년의 풍경을 만든다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저자, 에세이스트 2021년 10월호
 

지난해부터 유독 나와 비슷한 연배인 사람들의 부고를 자주 접한다. 무척 좋아했던 시사촌이 1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오랜 지인이 전조증상 하나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업계에서 알고 지낸 분과 늘 응원해 마지않던 그림책 작가님과도 가슴 아프게 이별해야 했다. 투병까지 셈하면 더 많다. 이미 암을 포함해서 여러 중증 질병을 견디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당장 올 초에도 나의 오래고 소중한 랜선친구가 쓰러졌다. 얼마 전 중병을 진단받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해온 친구가 한참을 펑펑 울던 날, 불현듯 깨달았다. 지난해와 올해가 ‘유독’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그런 나이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이런 일을 보고 들을 일이 더욱 많아지리라는(나 역시 이런 일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아졌으리라는) 것을. 그동안은 또래들의 조부모, 부모님의 이야기였는데 아주 서서히 우리들의 이야기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의 소식을 들은 이후, 유한한 삶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상실의 고통이 대책 없이 찾아드는 세상의 이치에 새삼 압도돼 마음이 한없이 표류했고 꽉 붙잡을 뗏목이 필요했던 나는 죽음과 늙어감을 주제로 한 책을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와 읽었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는 그렇게 읽게 된 일곱 권 중 가장 든든한 뗏목이 되어준 책이다. 사실 빌려오기는 했지만 가장 기대가 없던 책이었다.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제목도, 출간한 해에 아마존에서 장기간 1위를 차지한 이력도(경험상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와 나는 그리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다), ‘우아하게 세월을 건너는 법’이라는 메인 카피도(우아하게 늙을 수 있는 건 주로 계급적 특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썩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가 시인 린다 패스턴의 시구 “슬픔이란 빙빙 도는 계단이다”를 인용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이 책을 소장하기 위해 주문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메리 파이퍼가 70세에 쓴 이 책은, 노년에 맞닥뜨려야 하는 연령차별주의(‘노인혐오’로 발현되거나 노인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대하는 과잉친절로 발현되는)와 외모지상주의, 상실과 고독, 돌봄노동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이런 난제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적으로 단단하고 매일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나가는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에 관한 실용적인 지혜들로 가득하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왔다. 독일에는 ‘슐림베세르옹 Schlimmbesserung’이라는 말이 있다. 번역하자면 ‘더 나아짐으로써 나빠진다’는 뜻이다. 나는 때때로 이 표현을 몸소 증명해왔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나만의 개성을 즐기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p.337~338

특히 그가 안정감을 주는 ‘반복’과 활력을 선사하는 ‘변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자기계발에 힘쓰는 ‘노력’과 노력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는 ‘휴식’처럼 두 가지 상반된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당장 오늘부터 삶에 적용해야 할 지침이었다. 현재와 동떨어진 마법 같은 미래란 존재하지 않고, 오늘부터의 하루하루가 쌓여 노년의 풍경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어가다 보면 삶의 유한성도 상실의 필연성도 보다 단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용기를 손에 꼭 쥐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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