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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아들이 내게 참새를 그려달라고 한 날
석창우 화백 2021년 11월호
1984년 가을, 나는 어느 중소기업의 전기기술자로 시설 점검을 하던 중 2만2,900V의 전압에 감전됐다. 그 후 1년 반 동안 12번의 수술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두 팔과 오른쪽 발가락 두 개를 잃었다.
퇴원 후 집에 오니 사고 나기 한 달 반 전에 태어난 두 살 된 아들과 세 살배기 딸이 나를 맞이했다. 양팔이 절단돼 장애 1급이 된 나는 당시 말하고 걸어 다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커가는 자식들에게 손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아빠보다는 양손이 없어도 무엇인가 하고 있는 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발가락으로 책 넘기기, 신문 접기, 물건 잡기 등을 연습하고 갈고리 의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연구해 보기도 했다.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외출해 사고 후 처음으로 혼자 집에 남게 됐는데, 목이 많이 말랐다. 냉장고에서 물통은 꺼낼 수 없었지만 맥주병은 갈고리로 꺼낼 수 있었다. 맥주병을 방 벽에 기대 놓고 발가락에 끼운 오프너로 따려 하니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병이 계속 밀려 방구석으로까지 들어갔는데 그렇게 되니 병이 고정돼 쉽게 병뚜껑을 열 수 있었다. 병 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맥주는 비록 따뜻해졌지만 밥공기에 따라서 마신 맥주는 참으로 시원했다. 이것이 내가 손이 없어진 후 만들어낸 갈고리와 발가락의 첫 합작품이 었다. 
1988년 초 가족들과 함께 요양차 전주에 갔는데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펜과 노트를 갖고 왔다. 첫째에게는 사고 전 양손으로 그나마 해준 것이 있었지만 아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어린 아들은 내가 손이 없어 그림을 못 그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에게 나는 무조건 해주기로 했다. 갈고리에 펜을 끼운 후 그림책을 보고 참새 한 마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려 그려준 참새를 아들은 매우 좋아했다. 옆에서 보던 처형과 아내도 잘 그렸다고 칭찬하면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화실에 문의했더니 손 없는 사람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고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예가 여태명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게 됐다. 또 그 와중에 김영자 선생이 강의하는 누드크로키를 접했는데 누드모델의 포즈가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느낌을 받았다. 누드크로키를 하면서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한 수묵크로키란 장르의 작업도 하게 됐다. 
2000년 독일 초대전에서 한 첫 퍼포먼스의 반응이 좋아 퍼포먼스를 많이 하게 됐다. 그중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 패럴림픽 폐막식에서의 퍼포먼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11종에 실리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6년 7개월 만에 기독교 성경과 가톨릭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해 냈고, 이를 석창우 서체로 개발했다. 오는 11월부터 산돌구름에서 석창우체를 판매할 계획이다. 
내 삶의 전환점은 1984년 10월 29일 감전사고가 난 날과 1988년 2월 1일 아들이 내게 참새를 그려달라고 한 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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