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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플때, 힐링푸드
내게 남은 콩나물을 먹을 기회의 수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21년 11월호


어린 시절 우리는 고기반찬이 있어야 했다. 고기도 그냥 고기가 아니라 달고 짜게 가공한 고기여야 했던 때. 식탁 위에 스팸이나 햄이 구워져 있어야만 하던 시기다. 때로 그것이 꼬마돈가스여야 하는 날이 있었고, 하다못해 달걀물 묻혀 구운 분홍 소시지나 어묵볶음이라도 있어야 밥을 먹는 시절을 우리 모두 겪었다. 나는 이 시기를 ‘스팸기’라고 부른다.

입맛의 생애 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농담 삼아 나는 입맛에도 생애 주기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생애 주기별로 국가의 복지나 건강 검진의 레시피가 달라지는 것처럼, 각 생애 주기별로 맛을 깨닫게 되는 음식도 달라지는 것이다. 어릴 때는 통 몰랐던 꽁보리밥의 맛이 서른 즈음에 문득 각별하게 느껴지는 그런, 입맛의 성장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내 경우 스팸기 다음으로 ‘김치기’를 겪었다. 스팸김치볶음이나 스팸김치찌개가 아닌 그냥 김치 반찬의 가치를 자각하게 된 시기였다. 한국인으로 입맛이 성장한 시기였달까. 배추김치, 보쌈김치, 총각무 김치, 깍두기, 백김치에 물김치, 동치미를 넘어 고들빼기 김치나 갓김치에 뽕잎김치까지 김치 입맛의 저변은 평생에 걸쳐 조금씩 확장됐다. 참고로 그 끝에는 겉절이 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무 살이 좀 넘었을 때 나는 물렁물렁한 가지나물의 매력에 눈을 뜨고 진정한 성인식을 치렀다고 생각했다. 쌉쌀한 도라지나물도, 구수한 숙주나물도, 생강 향 스치는 달보드레한 무나물도, 국간장으로 간한 시금치나물의 말끔한 맛도 모두 이 시기에 받아들였다. ‘나물기’라고 이름 붙였다.
테니스 반나절 치고 와서 벗어둔 양말을 태운 듯한 연기 향이 가득한 청국장이며 시크무레하고 시커먼 강원도식 막장, 구수함을 깔끔하게 강조하는 시판 된장 대신 꼬리꼬리한 집된장을 바락바락 졸여 끓인 강된장 등 각종 해괴한 발효 맛에 눈뜨는 ‘강된장기’도 나물기와 비슷한 때에 왔다. 이 시기에는 우렁된장찌개 맛에도 개안하게 됐는데, 이전까지는 맛도 별로 없는 하등한 연체동물을 굳이 잡아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요즘 진입한 입맛 생애 주기는 ‘콩나물기’다. 이 입맛 생애 주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내게 콩나물은 우렁이 이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식재료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백반집에서 콩나물 반찬이 나오면 사양하며 물렸을 정도다. 삼겹살집을 고를 때도 콩나물 반찬이 나와서 그 콩나물을 같이 볶아 먹도록 하는 곳은 배척했을 정도였고, 콩나물국밥의 고장인 전주에 가서도 콩나물국밥을 먹지 않을 만큼 독종이었다. 콩나물에 저항감 없는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에 비해 나는 콩나물 입맛 성장이 무척 더뎠던 셈이다.
콩나물이라는 것이, 노란 머리는 콩도 아닌 것이 씹기만 귀찮고, 그렇다고 해서 몸통에 신통한 면이 있는가 하면, 질깃하고 별 대단한 맛도 없다고 생각돼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물며 영양소가 가장 많이 분포한다는 뿌리는 볼품까지 없으니 말할 것도 없다. 숙주나물의 진득한 구수함은 찬미할지언정 콩나물은 도통 맛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해물찜, 아귀찜, 미더덕찜같이 콩나물이 주연급 조연인 음식을 먹을 때만 콩나물을 가려내지 않고 먹었다. 그 식당이 콩나물 중에서도 곧고 통통하게 자라는 찜용 콩나물을 골라 머리와 뿌리까지 다 제거했다면 정말 감사했고 말이다.
문득, 콩나물이 엄청 먹고 싶어졌다. 어리석은 전날의 과음으로 온몸이 아스파라긴산을 불렀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느 날 걷잡을 수 없이 콩나물이 먹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숙취 없이도 미친 사람처럼 자꾸만 콩나물만 먹고 있으니 아스파라긴산의 효용보다는 콩나물 맛 자체에 눈을 뜬 콩나물 생애 주기에 들어선 것이 맞다고 치자.
자발적으로, 그리고 먹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열망으로 콩나물을 구매한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시작은 칼칼한 콩나물국부터였다. 진하게 낸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 듬뿍 풀어 바르르 끓여낸 칼칼하고 진한 감칠맛이라니. 그리고 그 안의 건더기 지분 100%를 차지하는 콩나물은 몸통이 아삭아삭, 머리는 꼬들꼬들하게 씹히며 깔끔하게 고소한 맛을 냈다. 내년에 걸릴 감기까지 물리치는 것만 같은 시원한 얼큰함! 왜 이 맛을 여태 알면서도 모르고 살았을까. 콩나물국의 콩나물, 콩나물이 너무 좋았다. 
수줍게 몸을 꼰 호리호리한 콩나물에 대한 늦사랑에 불타올라, 하루건너 하루꼴로 콩나물을 사다 나르고 있다. 콩나물 한 봉지 340g 단위는 너무 적은 양이 아닌가 불평할 정도로 콩나물을 갖가지 방법으로 몰아 먹는다. 맑은 콩나물국에 청양고추 몇 줌 넣어서 시원하게, 시원하게 익혀둔 김치를 송송 썰어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 또 다른 맛의 칼칼함으로 즐겨보기도 했다. 채 썬 가을 무 한 줌에 잘게 자른 황태도 넣어 더 고소하고 달달한 맛의 맑은 콩나물국 업그레이드 버전도 즐겨볼 생각이다. 
국으로만 콩나물을 먹으니 또 뭔가가 아쉬워 숫제 콩나물밥도 한 솥 가득 지었다. 콩나물 무침은 희게 할까 빨갛게 할까 그것만이 문제며, 삼겹살을 먹는다면 꼭 두루치기 스타일로 콩나물도 함께 볶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갈 요량이다. 콩나물 조림이라는 조리법은 마침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 유명인사가 선보여 화제인 모양이던데, 그 역시 따라 해보고 밥에 썩썩 비벼 먹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인가에 라면을 끓이게 된다면 그때는 꼭 콩나물 한 움큼 잡아넣고 새빨간 고추기름도 몇 바퀴 둘러 얼큰한 해장 라면 스타일로 끓일 것이다.

새삼스러운 맛에 대한 편견을 떨치고 즐겨보길 
대학 때 친구네 놀러 갔더니 ‘갱생이죽’이라는 것이 있었다. 경상도식 김치콩나물죽이라는데, 나는 그런 음식을 생전 처음 봤고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야 콩나물이 잔뜩 들어 있었으니 당시의 나로선 매너 있게 맛있는 척을 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때 갱생이죽을 맛있게 먹던 친구에게 이제서야 너무나 미안해진다. 친구 어머니가 끓여두신 그 집의 별미를 나 혼자 맛을 몰라 잘 먹지 못하는 주제에 콩나물이 싫다는 고백까지 했으니, 정말이지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입맛의 생애 주기마다 새삼스러운 맛들에 눈뜨고 뒤늦게 후회를 하곤 했다. 가지가 그랬고, 나물이 그랬고, 온갖 장이 그랬고, 우렁이 역시 그랬다. 이제 콩나물이 내게 새로운 후회를 가져왔다. 아, 그 갱생이죽, 지금이었다면 너무나 감사히 맛있게 먹었을 텐데! 지난날 나는 콩나물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눈이 멀어 있었고, 이제 눈을 떴지만 잘못 지나 보낸 시간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현대 인류의 기대 수명이 100세라고 했을 때, 한 사람이 태어나 자주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먹을 수 있는 기회가 10세부터라고 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고작 9만8,550회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매일 먹지 않는다면 그 기회의 수는 훨씬 줄어들어 두 끼만 먹는 사람들은 먹고 싶은 것을 고작 6만5,700끼밖에 먹지 못한다.
현대 인류의 평균치보다 기대 수명이 좀 더 짧으면서 하루 한두 끼만 먹는 내게 그 기회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적어서, 내게 남은 기회는 2만 끼가 채 되지 않는다. 나는 맛 좋고 영양도 풍부하며 저렴하기까지 한 귀중한 식재료, 콩나물을 맛있게 먹을 기회를 이제껏 2만 끼 이상 허비했고, 남은 기회가 이제는 2만 끼도 되지 않는다. 지난날의 교만한 편식을 후회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새 나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먹었다는 숫자적 자각 후엔 그 후회가 좀 더 진하고 먹먹하다.
콩나물이 마지막 후회이길 바란다. 혹여나 여태 오지 않은 입맛 생애 주기가 있다면 모쪼록 하루빨리 당도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게 남은 오만한 편견이 아직 남았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떨칠 수 있길 바란다. 매정한 유한함 앞에서, 나는 유한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태도로 갱생이죽 맛나게 끓이는 어머니를 둔 그 친구에게 간만에 안부 연락이라도 해야겠다. 은근슬쩍 갱생이죽 끓이는 법도 물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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