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라이프 #키워드
친환경부터 동물복지까지 생산자도 소비자도 웃는 ‘윤리적 소비’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1년 11월호


몇 해 전 공정무역 운동에서 비롯된 ‘윤리적 소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소비를 통해 세상에 좀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격 대신 가치로 윤리를 실천하기 시작한 소비자들과 품질만큼 기업 윤리를 의식하기 시작한 기업들. 이들이 결코 작지 않은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팬데믹이 가져온 가장 환영할 만한 변화 
올해 초 영국 BBC는 코로나19가 윤리적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유례없는 보건 위기를 겪으면서 소비자들이 환경과 생태계, 지속 가능성, 기후변화, 인권, 동물복지 등 윤리적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됐고 소비 습관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올해 초 프랑스에서는 제품의 친환경 정도를 도식화해 전면 라벨로 표기하는 ‘에코 스코어(Eco-score)’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경영컨설팅 회사 액센츄어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소비자의 60%가량이 팬데믹 발생 이후 보다 친환경적이고 지속적이며 윤리적인 소비를 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그중 90%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이러한 소비습관을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소비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 시대 소비행태 변화와 시사점 조사’에서도 40.4%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상품 구매 시 가격과 품질로만 구매 결정을 하지 않고 소비 행위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더 고려하게 됐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41.3%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 많아졌고, 53.8%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제품을 이용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 회장은 “비대면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에 따른 사회와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윤리적 소비를 촉진시켰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윤리적 소비일까. 최근 직원에게 막말을 하거나 서비스 종사자를 폭행하는 등의 대기업 갑질에 대한 논란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을 때 사람들은 ‘저런 기업의 제품 혹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다’며 불매운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불매운동은 자신이 지지하는 신념이나 철학을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드러냈다는 점에서 윤리적 소비의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지난 30년간 각 기업과 제품을 윤리적 관점에서 평가하며 정보를 제공해 온 영국의 격월간지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 Magazine)』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가장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라는 행동은 우리의 지갑 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투표권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소비행동의 변화에 부응해 가을, 겨울철만 되면 모피 제품을 앞다퉈 선보이던 해외의 명품 브랜드들도 최근에는 동물모피를 지양하고 인조모피에 해당하는 ‘에코 퍼(eco fur)’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착한 소비’로 불리기도 하는 윤리적 소비는 가치에 부합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비용을 더 지불하고, 가치에 맞지 않는 제품은 불매할 수 있는 ‘소신’에 더 가깝다. 사회적경제 미디어인 이로운넷은 비윤리적으로 생산되는 제품의 구매를 막는 불매운동과 윤리적 제품을 권장하는 구매운동을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의 실천 방법으로 꼽는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친화적인 소비를 하는 ‘녹색 소비’,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위해 로컬푸드 등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로컬 소비’, 쓰레기배출을 줄이기 위한 소비 절제,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공정무역 제품 구매, 여행지와 원주민을 배려하는 ‘공정여행’,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갖고 기업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의 물품과 서비스 이용, 지역경제 선순환에 도움이 되는 지역화폐 사용 등도 윤리적 소비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나’ 아닌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 
LG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윤리적 소비가 늘어난 통계를 분석하며 경기침체기에 윤리적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현대인의 의미 추구 경향이 소비 영역에서 윤리적 소비로 나타나고 있고 둘째, 가격보다 가치에 더욱 중점을 두는 소비자가 늘고 있으며 셋째, 윤리적 소비의 방법이 공정여행,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등 더욱 쉽고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격보다 가치에 의미를 두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현실이다. 그간 소비자들을 현혹해 온 ‘무료, 공짜, 저렴’이라는 말 뒤에는 누군가에 대한 착취와 희생이 숨어 있다. 3천 원짜리 바나나 뒤에는 생산 국가의 농민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착취가 숨어 있고, 저렴한 고기·계란·우유에는 공장식 축산에 따른 동물들의 고통이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윤리적 소비를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많은 구조 변경이 이뤄질 수 있다. 윤리적 소비가 소비활동과 관계된 정치, 사회, 경제, 문화뿐 아니라 자연과 환경, 인간, 동물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축산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확인하면 동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값싼 수입 농산물 대신 국내산 농산물을, 그것도 보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한다면 화석연료 소비가 줄어든다.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격 대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훨씬 중요한 가치를 위해 지갑을 열기 시작한 소비자들. 이 현명한 ‘가치소비자들’이 세상을 보다 ‘착하게’ 바꿔가고 있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