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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 변화의 현장을 가다
원주, 의료기기 도시로 우뚝 서다
이지은 『나라경제』 편집장 2021년 11월호

 
심정지 환자를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를 통해 골든타임 안에 극적으로 소생시킨 의인의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의료진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의 확장과 변신은 무한하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사용하는 대규모 의료장비가 아니더라도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AED)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분류한 의료기기 품목명이 2,200여 개일 정도니 다품종 소량생산은 의료기기산업의 특징이다. 의료기기산업은 기술의존도가 높아 하이엔드 기기는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보급형은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원주 흥업면 보건지소에서 출발한 의료기기 클러스터
국내 의료기기시장은 지난 6년간 연평균 10.3% 성장했지만 수입품 점유율이 여전히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대형병원은 아직도 수입 의료기기 비중이 90%가 넘는다. 생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임상데이터가 많은 제품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 또한 B2B 비즈니스인 데다 의료기관, 보험기관, 규제당국, 유통상 등 시장참여자도 많아 이해관계가 복잡한 분야이기도 하다. 
원주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국내 최초의 의료기기 집적지다. 흥업면 보건지소 열 칸짜리 건물에서 출발한 의료기기산업이 불과 20여 년 만에 연간 매출액 7천억 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수출액의 15%를 담당하는 원주에는  150여 개의 의료기기 제조기업과 40여 개의 창업기업이 모여 있다. 
20여 년 전 지역균형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역에 특화산업 육성 과제가 부여됐다. 원주는 군사도시 이미지가 강한 곳이었다. 관광지가 있는 것도, 특별한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도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 연세대 원주캠퍼스에는 아시아 최초로 의학과 공학이 융합된 의공학과가 개설돼 있었다. 이러한 대학의 장점을 살려 지역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의료기기산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1997년 원주는 당시 통상산업부가 주관한 테크노파크 선정사업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이듬해 자체 예산을 투입해 창업보육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실험실 창업에서 임대형 공장으로, 자가 공장으로의 성장 경로를 걸었다. 양명배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전략기획실장은 원주가 최초의 도전에 성공했다면 현재와 같은 성장을 맛보지 못했을 수 있다고 회상한다. 
원주가 의료기기 도시로 성장하던 중 2003년 원주시의 출연과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공학과의 지원으로 재단법인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이하 재단)가 설립됐다. 의료기기 전문인력 양성, 기술개발 지원, 입주기업 자금 및 사업 지원, 인허가와 글로벌시장 진출 지원 등 기업이 필요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원주의 의료기기산업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원주는 2019년 7월 전국 최초로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실시간 심전도 모니터링 플랫폼을 개발한 메쥬 등 원주에 입주한 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재단에서도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6년부터 차세대 건강관리 관련 정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주 혁신도시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들어오게 됐다. 이 기관들이 보유한 빅데이터는 큰 자산이다. 보안 문제로 재단에서 서버와 시스템을 구축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기서 분석된 자료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애로는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이것을 분석하고 코딩해서 산업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의공학과뿐만 아니라 디지털헬스케어과 등으로 전공이 세분화됐고, 연세대뿐 아니라 한라대나 상지대로도 과정이 확대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인재가 배출되면 산업 형태가 다양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인재가 모여드는 선순환이 작동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주 의료기기산업의 역사를 쓰고 있는 기업에 메디아나가 있다. 환자감시장치와 심장충격기를 전문으로 한다. 고객사로는 미국의 메드트로닉, 독일의 지멘스 등이 있다. 강동원 메디아나 사장은 ODM(제조자 개발 생산)을 통해 글로벌 기업에 안정적으로 자사 제품을 납품했던 것이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했다. 지금은 글로벌 기업의 ODM뿐 아니라 자사브랜드로 해외시장에 나서고 있다. 심전도에서부터 체성분까지 측정 분야를 넓혀나가고, 기술 분야도 진단에서부터 예측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메디아나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기술도 최고 수준이지만, 병원·대학 등의 R&D 성과를 이전받아 사업화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몸소 실현하고 있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메디아나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브란스 계열의 병원, 인공지능(AI) 전문기업과 메디아나 등이 컨소시엄으로 2년째 심전도를 통해 심장 관련 질환을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고 2~3년 후 사업화할 계획이다.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K의료기기 기업 탄생을 기다리며
원주는 지역 대학과 지자체의 협업하에 지역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을 이룬, 지역 자원에 기반을 둔 특화 도시다.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도 중요하지만 인력 수급 역시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의료기기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무시할 수 없다. 우선은 우리가 잘하는 의료기기 분야에 주력해 세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의료기기는 다른 산업에 비해 시장 진입 후 판매가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신규업체의 경우 경쟁이 거의 없는 새로운 영역을 찾거나, ODM·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같이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빅3’에 필적하는 하이엔드 의료기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세계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산업의 전 주기 지원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의료기기 기술자가 반드시 인허가 법제도에 해박하지 않아도, 이를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만이다. 


Interview 1: 양명배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전략기획실장

원주 의료기기 산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원주시와 연세대는 1997년 의료기기로 정부의 지역산업 육성 과제에 지원했으나 탈락했다. 의료기기산업 기반이 전혀 없는 원주에서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탈락 후 원주시와 연세대는 중앙정부 도움 없이 의료기기산업을 육성해 보고자 원주시 흥업면에 있는 보건소의 안 쓰는 공간 열 칸을 개조해 창업보육센터를 만들었다. 그 후 대학 연구개발(R&D) 기술을 이전받아 창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1998년엔 원주시가 부도난 배터리 공장을 매입해 임대형 공장을 만들어 창업기업이 제품을 양산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외부 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자가 공장이 필요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자, 원주 문막읍 동화리에 의료기기전용공단을 10만 평 규모로 조성하고 공장을 선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여 년의 과정에 주축이 됐던 분들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 원주시장의 의지로 의료기기 사업이 시작됐는데, 20여 년 동안 정책이 일관성 있게 이어졌다. 원주 의료기기산업 육성을 처음 구상한 분은 연세대 윤형로 교수다. 전자공학을 연구하셨던 분인데,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아시아에서 최초로 의학과 공학이 융합된 의공학과를 만들고 인재를 길렀다. 그러나 그렇게 키운 인재가 취업해 외지로 떠나자 우수 인력이 지역에 머물며 지역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의료기기산업 육성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의료기기 사업에 애로점은 무엇인가.
의료시장이 보수적이다. 의사들은 지금까지 쓰던 익숙한 기기, 최고 수준의 기기를 선호한다. 글로벌시장에서 이미 최고 수준에 오른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허가 관련 규정들이 무역장벽이라고 할 정도로 까다로워지고 있어 기업들이 대응하기 어렵다. 재단이 관련 기본 사항들을 컨설팅해 준다. 

기술이전이나 협업 우수사례가 있다면.
디지털 헬스케어로 각광 받는 메쥬라는 기업이 있는데 연세대 의공학부 출신의 대표와 대학원 랩실의 연구원이 창업해 성장한 경우다. 약품 주입 기계를 개발하는 원주 업체와 유해 미생물을 센싱하는 기술이 있는 대전 연구소를 연결한 사례도 있다. 기업이 우수 인재를 채용해 자체 기술력을 갖는 것도 좋지만 기술을 찾아내 제품과 접목시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전환 상황은?
전통 의료기기에서 갑자기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투 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 의료기기를 디지털 헬스케어로 전환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외부 기업이 원주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최근 200억 원 규모의 디지털 헬스케어 센터 건립 사업이 확정됐다. 재단 부지 내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돼 50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우수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2차 성장단계의 목표다.

의료서비스와의 연결도 중요할 텐데.
원주가 수도권과 교통이 좋아지면서 의료 수요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디지털서비스가 주요 무기가 될 수 있다면 역으로 수도권 수요가 유입될 수 있다.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 ICT 관련 의료산업으로 성장한다면 지역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강원도는 의료관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관광과 의료가 연계돼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공공부문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은?
인력 수급 부분이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로 전환되면서 인력에 대한 갈증이 더 크다. 다행히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지역산업과 같이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외부 IT 인력이 취업해 원주로 오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훈련된 인재들이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이 더 쉽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연세대에 디지털헬스케어학부가 생겼다. 이 외에도 여러 유관기관과 교류하며 2단계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Interview 2: 강동원 ㈜메디아나 사장

메디아나는 어떻게 시작한 기업인지 궁금하다.
지금의 대표이사가 1993년 의료기기 수입으로 시작해 1999년부터는 제품을 직접 만들고자 제조로 전환했다. 내가 메디아나에 합류한 2001년 첫 제품이 나왔는데,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음에도 세계 1위 의료기기 기업인 넬코(현재 메드트로닉)에 ODM 방식으로 그 제품을 납품하게 됐다. 연세대 의공학과에서 윤형로 교수님을 주축으로 5명 정도가 기술을 개발했고, 제품화를 메디아나에서 한 것이다. 그 후 ODM을 하면서 글로벌 기준으로 제품을 검증받으며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코스닥 상장도 했다. 직원들에게 주식 등으로 보상해 줄 수 있어서 좋다.

메디아나의 주력 제품은 무엇인가.
환자감시장치(Patient Monitor)라고 심전도, 혈압, 혈액 속 산소량 등 생체신호를 외부에서 센서로 측정해 주는 장비다. 병원에서는 기본장비다. 초기에는 ODM 비중이 컸고, 현재는 ODM과 국내 판매, 해외 판매가 각 3분의 1씩 차지한다. 자동제세동기(AED)와 흔히 인바디라고 불리는 체성분분석기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구급차 안에서 응급구조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우선 파악하고 의사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바로 처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품 등 네트워크와 통신기술이 접목되는 형태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AI 등과의 연계는 잘 되고 있나.
AI 기술의 의료기기 접목은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리스크가 작은 부분부터 시도되고 있다. 의료기기 허가의 경우 식약처 인증을 AI를 통해서 받고 그것이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메디아나도 생체신호로 사전에 병을 예측해 환자가 응급상태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을 AI를 접목해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고, 2~3년 후에는 허가받은 제품이 나올 것이다. 

원주 의료기기 기업들에 중국의 도전은 어떤지. 
우리가 2000년대 초반 환자감시장치를 개발할 때 민드레이라는 중국 기업이 있었다. 연구원 50여 명 규모의 작은 기업이었는데 이제는 중국의 큰 내수시장과 국영기업이라는 강점을 발판으로 연구원 1천 명 규모 기업으로 성장했고 미국시장에도 진출했다. 환자감시장치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레드오션이다. 그래서 새로운 품목으로 생각했던 것이 제세동기다. 그러나 이 분야 역시 중국 업체들이 따라오고 있다. 중국의 의료기기 기술이 많이 강해졌다. 게다가 의료기기 허가는 중국이 제일 받기 힘들다. 

메디아나의 차별점은 어디에 있나.
첫째, 몸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들을 증폭하고 필터링해서 질병의 유무를 측정해 내는 생체신호 측정 기술이다. 30년간 보유해 온 기술이다. 둘째, 임상 기술이다. 제조 등의 기술을 따라할 수는 있어도 오랜 임상시험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셋째, 풍부한 글로벌 경험에서 쌓은 신뢰성과 인허가 대응 능력이다.

사업의 성공적 운영 요인을 꼽는다면?
ODM을 통해 전 세계 체인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 납품해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국가별로 각각 인증을 받으며 팔았다면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ODM 수출이 재투자에 큰 역할을 했다.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기업문화가 있다면.
메디아나 사훈 중 하나는 ‘국부창출’이다.  사업 시작 당시 국내시장엔 수입 의료기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가 AED를 만들면서 수입가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가격이 떨어질수록 국민들의 소비 효용은 늘어나니 국부창출을 하는 셈이다. 또한 AED로 지나가는 사람이 생명을 살렸다는 보도가 나서 보면 우리 제품이 있었다. 국부를 창출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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