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걷는 내내 푸른 바다를 벗하는 길
임운석 여행작가 2021년 11월호

 

아찔한 절벽 위로 난 해안 길을 따라 걷는다. 일상의 시름이 바닷바람에 날아가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파도에 씻겨 사라진다. 아득한 벼랑 끝 검푸른 파도가 거친 숨을 토해낸다. 생크림을 닮은 하얀 물거품이 한껏 부풀어 올라 구름처럼 풍성하다. 해안가를 따라 걷는 내내 파도 소리가 친구가 돼주는 금오도 비렁길로 여행을 떠난다. 

아찔한 절벽을 따라 바다가 춤춘다
밤바다로 유명한 전라남도 여수시에 금오도가 있다. 여수에서 뱃길로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가량 거리에 자리한다. 금오도는 30여 개의 유·무인도로 이뤄진 금오열도 중 가장 큰 섬이다. 금오도의 진짜 매력은 섬의 서쪽 해안 방향으로 솟은 벼랑을 따라 이어진 ‘비렁길’이다. 비렁은 벼랑을 뜻하는 여수 사투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 그리고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걷기 좋은 길로 알려져 있다.
비렁길은 모두 다섯 코스로 총 18.5km다. 하루에 다 돌아보기에는 무리다.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코스는 1, 2, 3코스다. 1~2코스는 완만해서 비교적 걷기 쉬우나 3코스는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1~2코스를, 등산에 자신 있다면 3코스까지 하루 만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
비렁길 1코스는 함구미마을에서 두포마을에 이르는 약 5km의 비순환형 둘레길이다. 여수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3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하면 비렁길 1코스에 곧장 갈 수 있다. 이외에도 돌산도 신기선착장에서 하루 7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면 금오도 여천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 함구미항까지 마을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함구미항에서 마을 골목을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들면 섬의 서쪽 절벽으로 향하는 1코스가 시작된다. 좁은 길옆 비탈진 밭에는 온통 방풍나물 천지다. 금오도는 우리나라 최대 방풍나물 생산지다. 요즘 것은 질겨서 못 먹고 봄에 수확한 것이 맛도 영양도 좋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를 돌아본다.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늘과 바다가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파랗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숲속으로 등을 떠미는 것 같다. 따사로운 햇볕이 온몸을 나른하게 데운다. 
길은 몇몇 구간이 비탈질 뿐 대체로 평탄하게 이어져 금오도의 절경을 즐기며 걷기 좋다. 잠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더니 어두컴컴한 숲으로 길이 열린다. 동백나무, 떡갈나무, 후박나무가 뒤엉켜 터널처럼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이래서 금오도 비렁길은 겨울에 와도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홍빛이 선명한 동백이 지천에 꽃을 피우니까. 
길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가 비렁길 1코스 중간 지점 어딘가에 송광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1코스 최고의 전망은 미역널방이다. 옛날에 주민들이 지게에 미역을 지고 와 널던 바위란 뜻이다. 미역널방에서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각양각색의 섬들이 어미 품에 안긴 듯 평화롭다. 탁 트인 전망을 마주하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해 탄성이 절로 터진다. 시선을 수평선 끝에 고정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그 지점에서 일망무제를 탐한다. 저 멀리 고흥 땅이 바다 위에 부유한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지점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짭짤한 갯냄새가 잔뜩 섞여 있다. 도시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냄새다. 비릿하기보다 청량하다. 외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아래에 초분(草墳)이 있다. 서남해안의 섬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토속 장례법이다. 시신을 땅에 바로 매장하지 않고 석축이나 평평한 곳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두는 매장법으로 1~3년 뒤 뼈만 추려 따로 매장한다. 계속 이어지는 숲길을 몇 구비 지나자 빈집이 몇 채 보인다. 해안가에 모여 있는 집들에 비해 지붕이 나지막하다. 바람이 강한 탓이다. 
1코스 두 번째 절경은 신선대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듯한 기암과 탁 트인 바다가 눈을 즐겁게 한다. 고요했던 바다에 물길을 만들며 배 한 척이 지나간다. 그 풍경이 한 장의 엽서처럼 아름답다. 바다와 숲이 번갈아 가면서 벗이 돼주길 몇 차례. 드디어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두포마을에 도착한다. 총거리 5km를 2시간 남짓 걸었다.

숨은 가쁘지만 눈은 즐겁다
직포항에서 출발하는 3코스는 1코스와 마찬가지로 포장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길로 접어든다. 길이 1코스와 달리 제법 가파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3코스 역시 따뜻한 남도답게 숲에는 동백나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동백꽃이 붉은 융단처럼 깔리면 아마도 쉽게 밟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30분 정도 동백숲을 거닐다 보면 갈바람통 전망대에 도착한다. 모처럼 하늘이 열리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 90m 이상 되는 큰 바위가 예리한 칼에 쪼개진 듯 두 개로 갈라져 있다. 그 틈으로 바닷바람이 밀고 올라온다. 시원한 바람이 그동안 흘렸던 땀을 순식간에 식혀버린다. 갈바람통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바닷물이 절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거칠다. 절벽 깊은 골까지 파고든 바닷물이 우렁찬 울음을 토해내며 하얀 물거품을 만든다. 그 모습도 무척이나 사납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운이 좋으면 토종 고래인 상괭이 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금오도에서는 이곳이 아니어도 바다에서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전망대에는 김진수 시인의 ‘바람이고 싶어라’ 시가 걸려 있다. 늘 푸른 바다와 함께 바람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며 춤추고 싶은 시인의 감성이 시에 녹아 있다. 
다시 오르막길이 30분 이상 이어진다. 힘들다 싶을 때쯤 나무로 만든 편안한 데크길이 이어져 매봉전망대로 연결된다. 매봉은 금오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정말 그렇다.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매봉전망대에서 보는 풍광은 금오도 최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치켜들게 한다. 
길을 걷는 동안 여기저기서 빈집을 찾아볼 수 있다.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없으나 빈집으로 오랫동안 방치된 듯하다. 
매봉전망대를 지나면 천 길 낭떠러지가 기다린다. 그곳에 출렁다리가 걸렸다. 다리 중간쯤을 지나자 어김없이 다리가 출렁거린다. 짧은 다리지만 명색이 출렁다리인지라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 다리를 건너 학동마을에 도착한다. 3코스는 3.5km 정도 거리다. 평지라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겠지만 비렁길 3코스는 2시간이 더 걸린다. 바다도 보고, 숲도 보고, 바람도 쐬고, 파도 소리도 듣고…. 그러는 사이 탄산음료를 마신 듯 ‘캬~’ 하고 탄성을 연신 터트린다. 무엇보다 비렁길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는 절벽을 잇댄 길이니 2시간도 부족하다. 

+여행 정보
여행 팁: 섬에서 식사할 만한 곳은 함구미항, 두포, 직포항에 모여 있다. 방풍나물 장아찌, 방풍나물 부침개, 방풍나물 수제비 등이 맛있다. 방풍나물은 예부터 풍을 다스리는 약재로 알려져 있다.  

찾아가는 방법: 1코스를 시작으로 다음 코스까지 순차적으로 걷고 싶다면 여수 백야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편하다. 3코스만 걷고 싶다면 직포선착장에 내린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