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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문과생 눈에 들어온 연구노트 문제, 블록체인으로 해결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1년 11월호

 

영화감독을 꿈꾸던 제주의 여고생이 있었다. 유명 영화감독의 조언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희곡 작가를 꿈꿨다. 하지만 작가의 길은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 방황했다. 그러던 중 언니의 아기를 돌봐주며 창업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창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우여곡절 끝에 창업에 성공했다. 지금은 카이스트발 테크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다. 좀 믿기지 않지만 이런 문과 출신 스타트업 창업자가 있다. 레드윗의 김지원 대표다. 김 대표의 독특하고 다이내믹한 창업 스토리를 소개한다. 

영화감독 꿈꾸던 소녀가
카이스트에서 창업을 하기까지

레드윗은 카이스트와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출신 석박사들이 모여 ‘구노’라는 전자연구노트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이다. 대전 카이스트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어떤 문제를 풀었을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연구원들에게는 ‘연구노트’ 작성이 필수다. 연구노트는 연구수행의 시작부터 연구개발 결과물의 보고, 발표 또는 지식재산권의 확보 등에 이르기까지 연구과정 및 연구성과를 기록한 자료다. 기업 간 기술적인 분쟁이 발생하거나 기술을 이전할 때 이 연구노트가 법적 요건을 갖춘 증거자료로 활용된다. 그래서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 R&D에 참여하는 연구자에게 연구노트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노트를 잘 기록하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노트가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페이지마다 작성 날짜와 작성자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또 위변조를 막기 위해 제3자가 확인했다는 서명도 필요하다. 연구현장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보안상 이유 등으로 대부분 수기로 이뤄진다. 그래서 전산화가 어렵고 보안에도 취약하다. 김 대표는 “연구자들은 수기로 작성한 노트들을 나중에 다시 연구노트로 작성하고 서로 증빙해 주느라 이중으로 일하며 고생한다”고 말했다.
레드윗의 ‘구노’는 이런 문제를 블록체인에 기반한 모바일앱으로 해결했다. 수기로 작성한 연구기록을 간편하게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 연구노트로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트를 업로드할 때마다 인증시간, 전자서명이 자동으로 포함돼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으로 저장된다. 이렇게 해서 법적효력을 갖게 함과 동시에 팀별 자료공유 및 작성권한 설정으로 보고 및 협업이 편리하도록 했다. 실험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 같은 문과생이 어떻게 이와 같은 문제에 착안해 창업을 하게 됐을까.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고교시절 영화감독이 되는 것을 꿈꿨다. 하루는 유명 영화감독인 장진 감독에게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당돌하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마침 제주 방문 일정이 있던 장 감독이 고교생이던 김 대표를 만나줬다. 그리고 문예창작과에 가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대로 고려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입학 직후에 또 장 감독의 추천으로 연극을 관람한 김 대표는 연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리고 희곡 작가로 인생의 목표를 바꿨다. 하지만 졸업 후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작가 일을 그만두고 진로 고민에 빠졌다.
백수 생활을 하던 중 출산한 언니의 제주 집에 가서 아기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육아에 불편한 점이 보였고,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주위에 육아 관련 아이디어를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아이디어가 많으면 창업해보면 어떠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창업하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 하면 되냐 했더니 카이스트에 가면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이스트의 창업 허브인 ‘카이스트 창업원’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대학원에 들어가서 배운 다음에 창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창업을 배울 수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배울 수 있더라고요. 교수님들이 창업에 경험이 있어서 실무적인 내용을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모르는 것은 교수님들에게 물어보면서 동기들과 함께 반려동물 미용실 예약앱을 우선 만들었다. 그러다가 당시 화제가 됐던 블록체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한번 저장하면 암호화돼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로 무슨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창업 아이템을 찾다가 연구노트 문제를 만났다.

전자연구노트 ‘구노’, 예상외로 
연구원보다 스타트업에서 먼저 찾아 

“남자친구가 공대생이고 언니와 형부도 모두 카이스트 교수로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의외로 중요한 정보들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겁니다.” 연구실에서는 수기로 쓴 연구기록을 다시 제출용으로 컴퓨터로 작성하며 이중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기로 쓴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고 블록체인을 통해 공식 문서로 검증받을 수 있도록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디어로 2019년 초 카이스트의 창업경진대회인 E*5에 도전했다. “시장이 너무 작지 않느냐”, “돈을 벌 수 있겠느냐” 등 심사위원들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블록체인 거품이 빠지던 시기여서 더욱 혹독하게 검증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도 꺾이지 않고 팀을 꾸리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제품을 만들었다. 그 덕분인지 E*5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본엔젤스의 첫 투자도 받았다.
이후 연구개발 끝에 누적 4만 건의 서면 데이터와 26만 건의 표지분류 데이터를 확보해 지난해 6월 전자연구노트 ‘구노’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 반응을 통해 제품을 개선하고 올해 1월 유료화했다. 월 9만9천 원의 이용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제품을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이 쓸 것이라는 가설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구원들은 예산도 없고 내부 승인절차도 오래 걸려서 진행이 더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스타트업들이 돈을 내고 써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스타트업들이 연구개발을 주도하며 특허를 내고 또 자신들의 기술을 지키기 위해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레드윗의 ‘구노’가 그 작업을 간편히 만들어주니 안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커지면서 구노를 사용할 만한 고객사가 급속히 늘어난 것도 도움이 됐다. 또 스타트업들은 매달 적절한 사용료를 내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SaaS 비즈니스 모델에 이미 익숙해 구노를 돈 내고 쓰는 데 저항감도 없었다. 덕분에 구노는 출시 6개월 만에 3만5천 개의 데이터를 인증하고 150개의 기업, 기관, 대학원에 판매되는 성과를 올렸다. 매출도 매달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레드윗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글로벌시장에 도전하는 차기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계약서, 고객정보 등 기업의 기밀문서를 관리할 수 있는 ‘바솔트’라는 서비스다. 
김지원 대표의 사례를 보면 창업에서 중요한 것은 전공이 아니라 문제인식 능력, 문제해결 아이디어 그리고 생각만 하지 않고 실천에 나서는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다. 김 대표가 이끄는 레드윗이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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