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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버려진 그물의 착한 변신
임정욱 TBT 공동대표 2021년 12월호
 
 
“해양도시 부산 사람으로서 항상 아름다운 바다만 봐왔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연안 바다를 돌면서 해양쓰레기로 가득 찬, 아름다운 바다의 이면을 봤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다는 것이 창업 동기가 됐어요.”
버려지는 해양쓰레기인 폐어망(그물)을 재활용해서 재생나일론으로 선순환하는 기술을 개발한 창업자가 있다. 부산의 넷스파 정택수 대표다. 그의 창업스토리를 들어봤다.
 
친환경 의류로 첫 창업,
재생원료 부족 겪고 직접 해결해 보기로

전 세계에서 매년 120만 톤 이상의 폐어망이 버려지거나 방치되고 있다. 이런 폐어망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어구는 수백 년 동안 썩지도 않아 환경오염 문제는 물론 그물에 해양생물이 걸려서 죽는 ‘유령어업’ 문제까지 일으킨다. 오죽하면 폐어망을 ‘바다의 지뢰’, ‘물고기의 무덤’이라고 할까.
한편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ESG 붐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많은 글로벌 패션 기업도 ESG트렌드에 맞춰 재생섬유 사용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섬유의 수요가 급속히 커지는 데 비해 재생원료의 수급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넷스파는 이런 문제의 해결에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며 탄소저감이라는 ESG트렌드에도 올라탄 해양 소셜 벤처다.
정택수 대표는 부산 부경대 안전공학과 출신이다. 졸업 후 2016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환경안전팀에서 일했다. 
“설비나 공정상에서 발생하는 환경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보람도 있었지만 일이 기업 내부에 국한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역량을 더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2019년 말, 마침 고등학교 친구면서 섬유분석 시험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송동학 이사(현 넷스파 CTO)와 차 한잔을 하다 첫 번째 창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친환경 소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회가 있겠다 싶어 친환경 의류 사업으로 창업을 했습니다.” 
회사 이름을 ‘플라스틱 사우나’로 짓고 친환경 의류 만들기에 나섰다. 그런데 의외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친환경으로 의류를 만들고 싶어도 그 원료가 없는 겁니다. 글로벌 패션 업체들이 폐기물을 활용한 원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재생섬유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재생섬유는 프리미엄까지 붙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하지만 기존 재생섬유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어, 양질의 재생원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수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폐어망에서 나일론 단일소재 선별 성공…
추출된 재생섬유는 합성수지 등에 활용돼

정 대표는 이 분야를 파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 아이템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예비창업패키지에 지원했는데 합격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시장을 조사해 보니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폴리에스터를 만드는 비즈니스는 이미 많이 나와서 성장 중이었다. 그런데 폐어망에서 재생나일론을 뽑아 재활용하는 사업은 규모화가 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미국의 브레오, 유럽의 DSM 등 몇몇 회사밖에 없었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어망은 대부분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한 합성섬유로 돼 있습니다. 이것을 소재별로 효율적으로 분리 및 회수해 내야 규모화해서 재생나일론을 대량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엉켜 있는 그물에서 이것을 분리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까지 폐어망에서 나온 재생나일론은 인도나 터키 등 노동력이 싼 나라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선별, 분리해 생산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폐어망이 매년 버려지지만 그냥 소각되거나 썩지 않는 쓰레기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 대표는 강원도 속초에서 시작해서 충남 태안까지 한반도의 연안을 일주했다. 그러면서 국내 폐어망들의 배출 형태를 살펴보고 왜  나일론을 추출하기 어려운지 연구했다. “실제로 폐기물 업체에 가서 직접 폐어망을 가위로도 잘라보고 낫으로도 잘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나일론과 PP, PE를 분리해 낼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전국의 폐어망 수거 업체를 10군데 이상 찾아다녔다. 그중 경남 하동의 수거 업체에서 폐어망 재활용 기계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반년을 그곳에서 숙식하면서 효율적인 폐어망 재활용 기계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말이 폐어망이지 사실 쓰레기 더미다. 대기업 직원으로 있다 어떻게 반년을 쓰레기 더미와 씨름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까.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물어봤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정말 해양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을 성공시켜야만 해양쓰레기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씩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내 자신의 역량이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고요.”
이렇게 치열하게 연구개발에 매달린 결과 넷스파는 폐어망에서 나일론(PA6)을 단일소재로 완벽하게 대량으로 선별하는 기술과 설비를 개발했다. 우선 광학 기술을 통해 폐어망의 소재를 구분해 내고, 5㎜ 이하로 연속으로 절단하는 분쇄기를 개발했다. 또 이 소재들 중에서 나일론만 분리해 내는 폴리머 회수 분리기까지 갖춰서 설비 공정을 완성한 것이다. 대기업인 효성TNC의 품질 검증도 받았다.
“이 기술을 통해 친환경 섬유와 산업재로 활용 가능한 재생나일론, 열분해유와 건축재 원료로 활용 가능한 생산 부산물을 만들 예정입니다. 추출된 재생섬유는 다양한 종류의 합성수지, 장섬유 원료, 산업용 기기에 활용됩니다. 심지어 차량 카시트에도 들어갑니다. 탄소저감에 도움이 되니까요.”
넷스파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TBT,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임팩트스퀘어에서 30억 원을 투자받았다. 이 자금으로 부산에 해양폐기물을 자원화할 수 있는 대량 생산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재생나일론은 국내 석유화학 대기업에서 구매할 예정이다. 또 원활한 국내 폐어망 수급을 위해 폐어망 자원순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산시, 포항시 등 지자체와 공급계약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일반 폐기물보다 처리비용이 3배 이상 드는 폐어망을 넷스파와의 협업을 통해 휠씬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정 대표의 창업 여정을 들으면서 감탄한 점이 있다. “해양쓰레기를 선순환시켜 지속 가능한 바다를 만들겠다”는 이 청년의 꿈을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도와줬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발로 뛰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초기 사업계획을 해양환경공단에 이야기했고, 해양환경공단은 효성TNC를 소개해 줬다. 또 초기투자사인 임팩트스퀘어가 투자를 하고 후속 투자유치에 많은 도움을 줬다. 하동의 폐기물 처리 업체 사장님은 기계를 같이 개발해 줬다. 효성TNC는 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듣고 계속 팔로업하면서 피드백을 주고 사업파트너까지 됐다. 
한국에 이런 어려운 도전을 하는 창업가들을 응원하는 창업생태계가 잘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직 이 폐어망 재활용 문제를 완벽하게 푼 글로벌 기업이 없는 만큼 넷스파가 잘 성장해 글로벌하게 주목받는 해양 환경 벤처가 되기를 기원한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