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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식한다, 고로 존재한다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01월호


일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박지혜 씨가 ‘초식마녀’가 된 계기다. 색다름에 흥미를 느끼고 했던 작업들이 그의 삶을, 그라는 사람을 완전히 바꿔놨다. 만화 그리는 사람에서 지구를 지키는 사람이 된 그의 푸릇푸릇한 채식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건 되기, 생각보다 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박지혜 씨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별 고민 없이 재료들을 꺼냈다. 냉장고 안은 그녀의 라이프스타일만큼 단순했다. 오늘의 메뉴는 ‘버섯잡채’. 물에 담가 불려둔 당면에 양파와 버섯을 손질해 볶는 손길에선 경쾌한 리듬이 느껴졌다. 기름을 두르고 간장을 두르는 과정에 들어차는 건 여유와 미소였다. “요리를 맛보는 즐거움보다 요리하는 과정이 더 즐거워요.”
그는 2만여 명의 SNS 팔로워, 1만여 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비건 인플루언서’다. 일상적 채식을 실천하다 본격적으로 비건이 된 게 2019년이니 2년 만에 ‘폭풍 성장’을 한 셈이다. 그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비건의 비결이 생각보다 쉬워서다. 원래 요리를 못했다는 그가 공유하는 두릅스프링롤, 잣크림파스타, 비건김밥, 버섯잡채 등 비건 레시피는 초보자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문턱이 낮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맛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탄소 배출을 절제한다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심플’ 그 자체다. 대단한 결심이나 금욕적인 각오가 필요한 게 아니라 ‘냉장고 한번 열어볼까’ 정도의 마음이면 충분하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남들과 다름없이 ‘치맥’으로 스트레스를 달랬던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한강의 동명의 소설 때문도 아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육식에 대한 불편함이 누적돼 있던 상태였어요. 영화 
<옥자>가 계기가 돼 가급적 육류를 소비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뿐 아니라 1년 가까이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커피도 거의 먹지 않는 집밥 라이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다시 취업을 하고 나면서 집밥 라이프가 흔들렸다. “회식도, 술자리도 잦았어요. 식단도, 몸도 엉망이 됐고요.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탈이 나는 몇 달이 이어졌어요.” 다시 ‘독하게’ 채식을 시작했다. 회사에는 ‘앞으로 점심은 따로 먹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매일 도시락을 준비했다. 이왕 하는 것,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동물권 존중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으니까. “시작이 절반이라고, 채식 습관 자체가 어렵지 비건이 되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100% 채식을 하는 비건이 됐죠.” 
비건을 시작하고 두 달 만에 확연한 변화가 나타났다. 변비가 사라지고 부기와 체중이 빠졌다. 피부와 머릿결도 부드러워지고 새벽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몸도 가벼워졌다. 그 덕에 잘되지 않던 요가 동작도 달인처럼 척척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적게 자도 덜 피곤했다. 더 드라마틱한 건 내적인 변화였다. 철저히 ‘나’에 가둬졌던 시선이 주변, 동물, 사회, 환경, 나아가 지구와 우주로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사고와 마음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졌다. “예전의 저는 돈도 못 벌고, 맨날 우울해하고, 그러면서도 많이 먹는 스스로를 자학했어요. 지금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축복이라고 느껴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한번 그런 순간을 마주하고 나니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더라고요.”


비건은 단순한 식습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가치관

비건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자 가치관이다. 가치관을 조금 비틀자 그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회사를 다닐 때 손수 준비했던 도시락 레시피들 그리고 채식하는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단상들에 사랑스러운 박지혜표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오늘 조금 더 비건』을 펴냈다. 그리고 스스로 ‘초식마녀’라는 필명을 붙였다. “사실 인간은 채식을 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데 동물 입장에서 말하고 싶어서 ‘초식’이라고 쓰게 됐어요. ‘마녀’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고 지은 닉네임이고요.”
책은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사람들에게 육류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했다. 비건으로서의 정체성이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비건 인플루언서의 삶을 살게 됐다. 서울을 벗어나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가까운 진주에 작업실도 얻었다. 그의 삶에 단절되고 분절된 부분들도 새롭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터전에서 그는 SNS, 유튜브, 클럽하우스 등을 통해 비건들과 교류하며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초식마녀를 매개로 그와 가까운 사람들도 조금씩 비건에 다가서고 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비건’이 대표 직함이 된 지금 그는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세 번째 책도 계약을 마쳤다. “완벽하지 못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10%의 실천이라도 하는 게 나아요. 비건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가치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을 때 느끼는 행복이 있거든요. 그걸 누렸으면 좋겠어요.” 
요즘 그는 리사이클링을 넘어 ‘제로웨이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초식마녀는 ‘오늘 조금 더 비건’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입문서다. 비건의 삶이 그를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증인이기도 하다. 초식하는 비건은, 이렇게 지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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