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다들 알다시피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였다. ‘벌써 일년’, ‘가지마 가지마’, ‘점점’, ‘With Coffee...’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브라운 아이즈는 2000년대 초반을 완전히 정복했다. 흠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비교적 짧았던 활동 기간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브라운 아이즈의 맥을 잇는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라는 이름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이 이름에 이 탁월한 보컬 그룹의 DNA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솔(soul)’은 원래 흑인 음악이다. 태초에 블루스가 있었고, R&B가 있었으며 이를 계승한 장르가 솔이라고 보면 된다. 음악 역사학자들은 1960년대에 솔이라는 장르가 태어났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흑인‘만’ 솔을 한 건 아니다. 백인도 솔을 했다. 이걸 장르적으로 ‘블루 아이드 솔(blue eyed soul)’이라고 부른다. 파란 눈의 백인이 부르는 솔이라는 뜻이다. 여러분은 아마 ‘When a Man Loves a Woman’이라는 진한 솔 음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 마이클 볼튼이다. 한데 이 노래의 원작자는 마이클 볼튼이 아니다. 퍼시 슬레지라는 흑인 솔 가수다. 즉, 흑인이 부른 오리지널 솔을 블루 아이드 솔 가수 마이클 볼튼이 재해석한 것이다.
이제 다 됐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 그룹 이름을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지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흑인의 솔도, 백인의 솔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그룹이지만 그 누구보다 솔을 잘할 자신이 있다는 의지의 표상인 셈이다.
그들은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솔, 그 중에서도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모았던 ‘필라델피아 솔(Philadelphia soul)’을 지향하면서 히트곡을 끊임없이 쏘아 올렸다. 필라델피아 솔, 줄여서 ‘필리 솔(Philly soul)’은 솔의 ‘클래식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솔에 우아한 현악, 관악 편곡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물을 해외에서는 필리 솔이라고 부른다. 오제이스의 ‘Back Stabbers’, MFSB의 ‘TSOP(The Sound of Philadelphia)’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악은 무진장이다. 우선 ‘My Everything’, ‘바람인가요’, ‘My Story’ 같은 대형 히트곡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곡들을 통해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곧장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그룹이 됐다.
그러나 앨범 단위로 따지자면 최고는 3집 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1번곡 ‘Soul Breeze’와 이어지는 ‘Blowin′ My Mind’를 들어보면 위에서 언급한 필리 솔의 정체를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아예 ‘Philly Love Song’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연히 ‘필리 솔풍 러브송’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나는 음악에 저급과 고급 따위 없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다만, 브라운 아이드 소울 같은 그룹의 음악을 우리가 ‘고급지다’라고 인식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한때 1990년대 피아노 기반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언론에서 ‘고급 가요’라고 정의했던 역사가 이를 말해 준다.
확실히 그렇다. 대중음악을 포함한 문화에서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에게 “나는 좀 달라”라는 느낌을 심어준다는 건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기실 이것은, 우리가 문화를 소비하는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