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나라가 그렇듯 한반도에도 동서남북 방위가 있다. 각 방위를 결정하는 곳은 조선의 수도 한양.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정동쪽과 정서쪽, 정남쪽에 각각의 나루터를 두고 그곳을 정동진, 정서진, 정남진이라 불렀다. 해가 뜨고 지는 나루터를 찾아 떠난다.
1년 365일 해가 뜨지 않는 날은 없다. 다만 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오늘 뜬 해는 어제도 떴고, 10년 전, 100년 전에도 떴으며 내일도 뜰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를 마주할 때마다 염원한다.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소망이 이루어지길. 그것은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유한한 삶을 사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서 절대적인 것을 찾아 간절한 마음을 품는 게 아닐까.
해맞이하기 좋은 겨울철은 유난히 해가 짧아서 늦게 뜨고 일찍 저문다. 그러니 새벽잠을 설칠 일도, 늦은 시각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만 바라볼 일도 없다. 또 차디찬 겨울 공기는 사계절 가운데 태양 빛을 더욱 선명하고 화려하게 반사한다. 우리나라는 동·서·남향에 각각 바다를 접한 반도다. 똑같은 태양이지만 위치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그 질감과 온도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동해는 거칠고 서해는 서정적이며 남해는 온화하다.
해맞이의 명불허전, 역시 정동진
동해는 격랑의 바다다. 끝없이 일렁이는 바닷물, 부서지는 파도와 하얀 물거품, 그 거친 바다 수평선을 뚫고 얼굴을 내미는 태양. 이 장엄한 광경을 마주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하고 밀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지난날의 반성이며, 새날에 대한 감격과 감사다. 역동적인 태양의 솟구침은 낙심한 사람에게는 살아갈 힘과 용기를, 새로운 출발선에 선 사람에게는 격려와 용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가 해돋이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동해안은 어느 곳이나 해돋이 명소지만 그중에서 명불허전은 ‘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 불리는 정동진이다. 신라 때부터 임금이 용왕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라지만, 정작 이곳이 명성을 얻은 것은 1천 년이 훨씬 지난 1994년, TV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이다. ‘잠에서 깨어보니 스타가 됐다’라는 말처럼 정동진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한 이후 일약 최고의 해돋이 스타로 등극했다.
‘#정동진_해돋이’ 인생 사진을 담고 싶다면 모래시계공원 앞 해변에서 정동진항과 언덕 위에 있는 비치크루즈 리조트를 배경으로 하면 좋다. 큰 파도에도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범선과 장엄한 일출이 큰 감동으로 밀려올 것이다. 정동진해변은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인 정동진역이 있으며, 모래시계공원과 연결된다. 공원 내에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박물관과 레일바이크 등 보고 즐길 게 많다.
은은하게 번지는 노을빛의 향연, 정서진
정서진은 광화문에서 정서쪽 지점에 있는 나루터다. 정확히 광화문과 34.526km 떨어졌다. 정동진이나 정남진처럼 예부터 나루터가 있던 곳은 아니다. 하지만 정서진이라는 이름이 붙자, 별 의미 없던 것이 이름을 지어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정서진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원래 이 일대는 고려시대 서해안 교통의 요지 중 한 곳인 ‘장모루’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나루터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넘치기 마련. 하루는 전라도에 사는 양반 자제가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여관인 ‘구슬원’에 묵었다고 한다. 때마침 구슬원 딸과 양반 자제가 서로 첫눈에 반해 정서진의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을 다짐했다고. 전설을 믿어서일까, 오늘날에도 정서진에는 해넘이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고 싶은 연인들이 하나둘씩 발걸음하고 있다.
이곳이 정서진이라 불린 것은 2011년 경인 아라뱃길이 개장하면서부터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진 시설은 정동진과 정남진과 비교해서 매우 현대적이다. 이곳의 랜드마크는 동글동글한 조약돌 형상을 한 노을종이다.
정서진에는 해넘이를 기다리면서 돌아볼 곳이 꽤 있다. 함상공원은 30여 년간 우리 해상을 수호하다 퇴역한 해양경비함을 옮겨 꾸몄다. 그중 ‘해경1002함’은 서해 훼리호 침몰 구조, 천안함 승조원 구조 등 역사에 남을 활약을 펼쳤다. 아라타워 1층에 있는 아라뱃길 전시관에서 세계 각국의 운하 역사와 종류를 살펴보고 23층 전망대에 오르면 인천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서진_해넘이’ 인생 사진을 담고 싶다면 노을종이나 영종대교를 배경으로 촬영하면 좋다.
서로의 안녕을 노래하다, 정남진
광화문 정남쪽, 정남진은 전라남도 장흥이다. 장흥의 랜드마크 정남진 전망대에서는 남도의 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데 득량만을 중심으로 고흥 소록도까지 수많은 섬이 펼쳐진다. 전망대는 하층은 파도를, 중층은 황포돛대를, 상층은 태양을 형상화했다. 이 전망대는 전망만 보는 곳이 아니다. 층층별로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해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10층과 9층에 전망대와 카페가 있고, 나머지 각층은 북카페, 문학영화관, 추억영화관 등 테마관으로 꾸며놨다.
그런데 장흥의 대표적인 해맞이 명소는 정남진 전망대가 아니다. 약 10km가량 떨어진 소등섬이다. 소등섬은 먼바다에 뱃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남편의 무사 귀환을 소망하며 작은 등을 밝히고 기도했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소나무 몇십 그루가 심겨 있는 작은 무인도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지만, 물이 들어차면 영락없이 섬이 되는 곳이다.
소등섬이 바라보이는 남포마을은 한국이 낳은 영화 거장 임권택 감독의 <축제> 촬영 장소로 알려졌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만큼 작은 어촌마을이다. 전망대에는 촛불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소등섬을 향해 서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일출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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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땅끝 해남에서는 일출과 일몰 모두를 볼 수 있다. 일출 포인트는 맴섬이다. 땅끝 선착장에서 갈두여객터미널 옆으로 난 목책 계단을 오르면 맴섬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마주한다. 일출을 감상하고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과 땅끝전망대 등을 돌아보면 좋다. 가능하면 땅끝마을 탑비에서 일몰을 대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