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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의 씨앗“기저질환이 있었다”라는 표현의 부작용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2년 01월호


백신 때문에 난리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선 일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곤 있지만, 부스터 샷에 청소년 접종까지 산 넘어 산이다. 접종률 80%가 돼도 연일 최다 확진자 수치가 경신되니 다들 지친 감이 있다. 돌파 감염이라니 어찌 짜증이 안 나겠는가. 이런 악조건 속에서 결사코 접종을 반대하겠다는 이들을 설득한다는 건 참으로 난제다. 
그런데 세상은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진 않는다. 모두가 과학자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방역 시스템이 일부만의 영역이 아닌 이유다. 때론 비합리적인 것에도 몰두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고, 같은 단어를 듣고도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사회의 힘을 짚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방역당국의 접근은 아쉬웠다. 지나치게 간결하고 딱딱한 설명이 많았다. 
“사망자는 기저질환이 있었습니다.” 백신 때문에 사망했다는 주장이 등장할 때마다 당국의 공식입장이었다. 의학적으론 백신 변수와 상관없이 자연사망으로 추정함이 마땅한 기저질환의 높은 단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됐을까? 백신과 사망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분석과 사망자는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설명은 다른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과 대중이 같은 맥락으로 기저질환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저질환은 생활용어다. 40대 이상만 돼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들어야 하는 친숙한 개념이다. 60대 이상이라면 그 질환들을 제어하는 여러 약을 먹으며 살고 있다. 그러니, 사망자가 기저질환이 있다는 건조한 말이 ‘기저질환이 있으면 위험하다’라는 추정의 크기를 키워 일상 세계를 교란한다. 의학용어와 생활용어가 구분이 되지 않으면 과학의 힘이 대중을 압도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건강의 자기 책임을 묻는 게 일상이 된 사회에 적응한 사람들은, 기저질환 키워드를 ‘아픈 사람은 알아서 조심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강박은 백신 접종 후 사망을 알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저질환도 없었는데’, ‘술 담배도 안 하는데’, ‘건장했는데’, ‘병원 한번 간 적도 없는데’ 등등이 꼭 첨가되지 않았던가. 기저질환이 있음에도 조심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매일 무엇을 먹기만 해도 기적이 일어난다는 과대광고와 한 입이라도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음식 종류를 나열하는 강박지침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우려할 정도로 영양제를 과다 복용한다. 또 치킨 몇 조각 먹은 걸 후회한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백신이 ‘몸에 들어옴’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과학적인 데이터가 있다 한들 무덤덤해지지 않는다. 조롱하면 그만일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착각이 망치로만 깨지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다층적인 이유를 무시한 채 드러난 결과만을 비난한다고 전문가 신뢰가 두터워질 리 없다. 비과학이 과학으로 둔갑한 사회는 끔찍하지만, 이상한 영역의 사람들을 멍청하다고만 해서는 변화가 요원하다. 일상 세계의 언어를 채집하고 사람들의 의미 부여를 분석해 ‘그들조차’ 설득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다가가는 것이 우직한 과학의 힘일 것이다. 일상 회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모적인 논란의 최소화를 찾는 고민을 설사 그게 ‘수사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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